지혜(智慧)의 파자점(破字点)

월우 스님 도갑사 주지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08년 10월 23일(목) 20:09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승군장(僧軍將)이었던 서산대사 휴정(休靜)에 관한 설화는 흔히 사명당(泗溟堂) 유명(惟政)과 함께 지혜 또는 도술을 겨루는 이야기로 전승된다.

하루는 제자인 사명대사와 농촌 길을 걸어가다 보니 농부가 새참을 먹는 중이었다. 농부의 옆에는 두 마리의 소가 누워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스승인 서산대사가 사명대사에게 도술을 제안했다.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날 것인가? 누런(혹은 붉은) 소가 먼저 일어날 것인가? 불교의 전통 파자점(破字点)을 쳐보니 불화자(火)가 나왔다.

그러자 사명대사는 “누런(붉은) 소가 먼저 일어날 것입니다”하자 스승인 서산대사는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날 것이다”고 했다.

한참 후에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나고 이어서 누런 소가 일어났다. 사명당이 스승인 서산대사에게 연유를 물었다. “불의 성질은 타기 전 연기부터 나고 불이 붙기 때문이다” 사명당은 내심 스승의 지혜에 깜짝 놀랐다.

두 고승은 만행을 하다가 저녁때가 되어 마을어귀에 위치한 아낙의 집에서 저녁공양을 기다리고 있다가 서산대사의 제안으로 저녁식사의 주 메뉴가 무엇으로 나올 것인가 알아맞히기로 했다.

사명대사는 국수가 나올 것이다라고 했고, 서산대사는 수제비가 나올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던 중 아낙이 저녁상을 들고 왔는데 수제비가 나왔다.

사명대사가 “오늘 일진상에는 뱀사자 사일(巳日)이므로, 뱀이 길쭉하니까 국수 아닙니까?”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서산대사가 하는 말이 “낮에는 뱀이 길게 있지만 뱀은 저녁이 되면 똬리를 틀므로 둥글넙적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수제비가 된다네”라고 했다.

이와 같은 지혜는 철저한 자기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불교만의 수행법에서 오는 것이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지혜 겨루기에서 이기는 편은 대체로 스승(서산대사)이며, 이에 반하여 제자(사명당)가 이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양자의 겨룸이 무승부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라도 사실상의 승리자는 서산대사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두 고승의 파자점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암시하는 바가 크다.

모든 사람이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처럼 지혜를 체득하지 못했지만, 우리모두가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교훈을 서로가 이해한다면 오늘날 우리사회의 문제로 등장하는 소통문화에 크나큰 윤활유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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