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옹께 형님이 아퍼 누워게셔..."

도포면 구학리 2구 김하숙할머니(84세)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2008년 12월 19일(금) 19:11
불쌍허디 불쌍혀서 같이 살았어

할머니 시집오신 후
가세 펴기 시작
“막내딸 키운 재미 많아’

나주 다도면. 지금은 다도댐에 잠겨 사라진 수몰지구가 고향이신 김 할머니는 33세때 도포면 구정리로 시집을 왔다.
할머니도 몸이 편치 않으시면서도 현재 노령과 노환으로 몸이 불편하신 김갑수(96) 할아버지를 돌보고 계신다.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셈이다
. “시집옹께 형님이 아퍼 누워계시더만, 감쪽같이 속았제. 병수발 할 사람이 없어…, 불쌍허디 불쌍혀서 같이 살았어…” 와병중인 형님은 3개월 후 돌아가셨다. 당시로선 불치병이었던 탓에 차도는 기대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김 할머니는 형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성심을 다해 병수발을 했다.
시집올때 집에는 시부모님 상방(喪房)이 있었고, 김 할머니는 시부모님 3년상에 형님 3년상까지 다 치렀다.
젊었을 때 곱다는 소리 많이 들었던 할머니. 18세때 꽃가마 타고 시집갔던 곳은 나주 다도면 이웃마을. 당시 경찰이었던 남편은 6·25때 순직했다.
“다들 피난 댕기고 어렵게들 살던 때제, 남편은 반란군(빨치산)한테 죽었어” 대개가 혼인신고를 하지않던 때라 국가에서 나오는 순직보상금은 시아버지 몫이었고, 꽃같은 나이에 홀로되신 할머니는 사회복지시설 영아원, 고아원 등에서 10여년간 보모 생활을 했다.
“중매쟁이들이 하도 설쳐서 지금 할아버지를 만났어” 평범한 농삿꾼 집안이었던 할아버지 집안은 김 할머니가 시집오신 후 가세가 펴기 시작했고 더욱 살만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도와 농사도 열심히 지었고 2남 1녀를 낳았다.
70년대 도포 간척지를 막을 때엔 온 가족이 고생을 많이 했다. 어느해 큰 수해를 입어 애들까지 나서서 수해 복구하느라 아들 학교를 보내지 못했던 것이 마음이 아팠고, 자식들 많이 가르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늘 가슴이 아프다고.
할머니가 낳은 아들 김장곤(50·충남아산 거주)씨, 김형균(47·여수 거주)가 멀리서 자주 어머니 아버지 안부를 여쭙지만, 가까이 사는 막내 딸과 사위가 더욱 큰 힘이 된다.
도기문화센터에 근무하는 딸 김성자(42)씨와 영암농협 근무하는 사위 하재남(48)씨가 하루가 멀다하고 들여다 보며 근황을 살피니 막내 딸 키운 보람과 재미가 많다고 한다.
거실에 걸려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었을 적 사진들은 모두 딸이 찍어준 사진이라고 자랑하신다. 도포중앙교회 권사이신 할머니는 독실한 신앙을 지닌 크리스찬. 눈이 침침하지만 지금도 성경을 항상 가까이 두고 읽으신다.
“사는 동안 주님 믿고 천국가는 것이 소원이제 뭐겄소”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 건강하세요”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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