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농민수당 설계도를 다시 그리자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19년 06월 28일(금) 15:06
김기천 영암군의원(학산, 미암, 서호, 군서) 학산면 유천마을 농부 전남대 사회학과 졸업 정의당 영암군지역위원회 부위원장
부지깽이도 손을 맞든다는 오뉴월 농번기가 끝나간다. 올 봄은 여러모로 유난스럽다. 이상저온현상으로 생긴 모잘록병이 모판을 주저앉히더니 벼물바구미 먹노린재가 대량 출현해 농사판을 뒤흔들고 있다. 수확철에 들려온 양파와 마늘값 폭락 소식은 일손을 놓게 만들었고 농기계 사고 등 크고 작은 안전사고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이종대사를 마치고 써레지침을 해야 할 판인데 낭보대신 씁쓸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죄스러울 따름이다. 농민수당 도입이 무산되고 말았다. 밥을 다 지어 뜸들일 일만 남았는데 그만 불이 꺼져 버렸다.
나는 이번 6월 정례회의에 맞춰 <영암군 농어민 기본수당 조례안>을 노영미, 박찬종 의원의 동의를 얻어 의회에 제출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성실하게 수행하며 헌신해온 농민형제들에게 기본수당을 지급하자는 조례였다. 고려대학교 양승렬 교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165조에 이른다고 분석하였는데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농민의 사회경제적 처지는 날로 하락하고 있다. 전국 65세 이상 고령농가 비율이 42.5%에 이른 반면 20세 이상 40세 미만 청년농은 1.3%에 불과하다. 전라남도 통계에 따르면 3ha미만 경작지에 농산물판매액 3천만원 미만인 농가가 전체의 93%에 달하고 2017년 농가 실질소득은 903만원에 머물렀다. 이는 도시근로자 소득의 63.7%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상태로는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하겠다. 농업에 기반을 둔 각 지방정부들이 앞다투어 농민수당을 도입하는 것은 바로 이 암담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우리 영암군과 의회는 도입을 보류하는 결정을 내렸다. 표면적인 이유는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 전라남도에서 2020년 1월부터 도입하기로 한 농어민 공익수당과 중복되어 불필요한 행정력이 낭비되고 혼선을 일으킨다는 점, 올해 우리 군 재정으로 자체 지급할 경우 그 규모가 30억원이 넘어 재정부담이 크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러나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농민수당 문제는 지난해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농민회를 통해 군과 의회에 제안된 중요한 농업의제였다. 1년이 지나는 동안 강진 해남 함평 등 여러 지방정부에서 농민수당을 도입하고 나섰다. 의회는 군정질문 등의 형식을 통해 농민수당 도입의 필요성을 강하게 요구하기도 하였다. 도가 준비하고 있는 농어민 공익수당을 참고해서 우리군 실정에 가장 잘 맞는 농민수당을 설계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 그 금쪽같은 시간을 허송해버린 셈이다. 지방자치시대란 무엇인가 묻고 싶다. 지방정부는 주민의 요구를 발굴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제도와 법으로 확립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 아니겠는가? 왜 전남도만 바라보는가? 우리 힘으로 농민수당을 만들고 중복, 혼선이 있는 부분은 나중에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다. 영암군은 전남에서 해남군 다음으로 경작지 규모가 두 번째로 큰 농업군이다. 농민수당과 같은 농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 농가소득을 높이는 제도를 만드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마땅한데 도와 이웃군의 눈치만 살피고 있으니 분통터지는 일이다.
농민수당과 관련한 쟁점 중 하나는 지급대상을 어디까지 할 것이냐다. 영암군 농가는 7600가구 정도이고 등록된 농어업경영체 수는 1만1000개에 조금 못미친다. 그런데 농가 및 경영체로 지급대상을 제한하면 중대한 사각지대가 생긴다. 바로 여성농업인과 청년농이 소외되고 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현재 실시하고 있는 모든 수당은 가구가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지급하고 있다. 아동수당 청년수당 노인수당이 그 예다. 농업에서 여성농민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농민의 53%가 여성이고 농작업의 60%를 여성농민이 분담하고 있다. 여성은 농사 외에도 가사 육아 자녀교육 같은 가정내 역할도 매우 크다. 그런데 가구나 경영체로 지급대상을 한정하면 여성농민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지급대상을 경영체별로 2인으로 늘리면 여성소외를 해결할 수 있는데 우리군은 그 대상이 16000명 정도가 된다. 이렇게 하면 지급액이 크게 늘어 재정부담이 우려되나 대상은 늘리고 지급액을 낮추는 방법도 대안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자영업자나 중소상인과의 형평성 문제다. 왜 농민에게만 특혜를 주느냐는 것이다. 거꾸로 묻고 싶다. 그럼 그동안 농민은 제대로 대접받고 살아왔느냐, 농산물값 제대로 받았느냐, 농가 실질소득이 900만원밖에 안 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그 많은 보조금'을 지원했는데도 왜 농민의 처지는 오히려 추락하고 있느냐에 대답이 필요하다. 농민수당은 특혜가 아니라 최소한의 생계유지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농민수당은 100%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게 설계하였다. 따라서 1차 수혜자는 농민이지만 최종수혜자는 지역의 중소상인 자영업자이다. 연간 100억원에 가까운 돈이 영암골목상권에 흘러 들어가면 지역경제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임이 명백하다. 지역상인들의 반발은 설득할 일이지 그를 핑계로 농민수당 반대 명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농민수당을 도입한 후를 생각해보라. 여성농민 행복바우처제도가 불러온 즐거운 변화가 무엇인가? 동네 엄마들끼리 미장원에 가서 수다를 떨고 비오는 날은 일손을 놓고 영화관에 앉아 평온한 일상을 만끽한다. 맛있는 밥집에서 고된 노동에 지친 육신에 기운을 불어넣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농민수당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폭넓은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일과 가정, 생활의 양립 이른바 워라벨이 농촌에서도 가능해지는 길이 열리는 것을 상상해보자
다시 강조하고 싶다. 행정과 의회는 지금 당장 농민수당 도입을 위한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토론회든 공청회든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전남도 조례안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영암다운 농민수당 설계도를 만들어 7월 의회에서 반드시 확정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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