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윗목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19년 08월 23일(금) 15:13
정찬열 군서면 도장리 출신미국 영암홍보대사
아버지 날이다. 성당에 갔더니 꽃을 달아주었다. 뉴욕 아들한테서 ‘happy father's day' 메시지가 오고, 저녁나절에는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에 와 보니 제비가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있다. 현관 앞 처마 밑 외등 뽀짝 옆이다. 벌써 몇 년째 찾아오는 단골손님이다. 터를 잡은 장소가 하필 외등 바로 옆이라 저녁이면 계속 불이 켜져 있어 제비에게도 좋지 않을 성 싶고, 좀 비켜난 곳에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터를 허물어버렸다. 그렇지만 녀석도 고집이 만만치 않아 또 같은 장소에 집을 짓기 시작한다. 집 주인과 제비 사이에 실랑이가 계속 중이다. 세 들어 사는 주제에 주인이 사랑채쯤에 살아달라는데 저렇게 왕고집을 부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민 온 후 몇 년간 아파트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날이 풀리자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웃 백인 할아버지는 ‘우리 집은 제비가 오지 않는데 당신 집에는 제비가 날아드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어느 날 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어미 제비가 새끼들을 품고 둥지 안에 잠들어 있었다. 새끼가 떨어지지 않도록 날개를 쫙 펴서 둥지를 덮고 있었다. 그런데 좀 떨어진 못 위에서 아비 제비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 진도에서 살던 일이 생각났다. 당시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학교 사택에서 살던 때였다. 단칸방이었다. 저녁이면 일곱 남매 우리들을 아랫목부터 차례로 눕히고 나서 아버지는 문풍지 우는 윗목에서 주무셨다. 겨울 눈보라치는 날이면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아침이면 윗목에 마련해 놓은 자리끼에 살얼음이 끼어있었다.
저기 저 아비 제비도 우리 아버지처럼 제 역할을 다하는구나. 살아가는 이치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나 미물이나 모두 거기서 거기로구나. 세상의 어린 것들은 저렇게 제 아비 어미의 등골 빠지는 헌신과 희생 아래서 차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구나. 생각이 많아졌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시 한 편을 썼다. <아버지의 윗목>라는 제목이다.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 / 새끼제비 여섯 마리 / 어미는 새끼들 보듬고 둥지 안에 잠이 들고 / 방이 너무나 좁아 / 한 발쯤 떨어진 못 위에서 / 아비 제비가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 내 어린 시절 겨울 단칸방 우리들 / 일곱 남매 아랫목에 쪼르르 눕히고 / 문풍지 울어대는 윗목에 주무시던 아버지 / 저 못 위에 제비처럼 / 밤새 오돌오돌 얼마나 추웠을까 // 이 밤 나는 못 위의 아비가 되지도 못하고 / 꾸벅거리며 선잠 자는 제비를 / 눈이 아프게 쳐다보다가 / 제 방으로 건너가 잠든 아이들을 /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 이불을 끌어다 가만히 덮어줍니다”
아버지날을 보내면서 아버지를 생각한다. 저 못 위의 제비처럼, 윗목을 지키는 아버지처럼, 세상의 아이들은 아버지가 있어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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