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국수의 꿀단지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0년 02월 21일(금) 15:37
정찬열 군서면 장사리 출신 미국 영암홍보대사
지난 여름, 열흘 정도 여행 때문에 집을 비웠었다. 다녀와 보니 마루에서부터 개미들이 까맣게 줄을 이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줄을 따라가 보니 그 끝이 선반 위에 놓여있는 꿀단지였다.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개미가 냄새를 맡았던 모양이다. 병을 열어보니 개미들이 새까맣게 죽어있었다.
왠 꿀단지 얘긴가. 최근 조훈현 의원이 새로 만들어진 미래한국당의 사무총장에 지명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래한국당이란 게 어떤 정당인가. 다가오는 4·15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이 급조한 위성 정당이 아니던가. 많은 사람들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선거가 끝나면 사라질 정당으로 비판받는 가짜 정당이다.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망언’을 쏟아냈던 이종명 같은 사람이 함께하는 정당. 그런 정당 같지 않는 정당에 내 고향출신 인사가 사무총장을 맡았다? 깜짝 놀랐다.
조훈현이 누구인가. 우리 고향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바둑 인재가 아니던가. 월출산의 푸른 정기를 받아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바둑 국수. 그런 사람이 나 같은 7급에게도 보이는 저런 악수를 두다니. 안타깝다.
조훈현 기사를 보면서 김지하 시인이 스쳐지나갔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김지하. 서슬 퍼런 박정희 독재에 저항했던 시인. 한때 그는 우리 세대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변절 문인으로 세상의 비웃음을 감내해야하는 입장이 되었다. 나는 한때 바둑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학처럼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우리가 아끼고 자랑하는 조훈현 국수가 행여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조훈현은 이미 명예를 얻은 사람이다. 바둑계 일인자의 자리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공인이 되면 이름 뒤에 늘 고향이 붙어 다닌다. 인터넷에서 조훈현을 검색하면 전남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출신이라고 뜬다. 그는 우리의 자랑이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들어갈 때만 해도 좀 마뜩지 않았지만 바둑계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았는가 싶었다. 개인의 정치적 선택을 타인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번 미래한국당 사무총장은 아무래도 그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이 권력까지 탐하다보면 사단이 나기 마련이다. 오물을 뒤집어쓰기 전, 이쯤에서 정치권에서 발을 빼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구보다 본인을 위해서 하는 얘기다. 장기나 바둑은 구경꾼이 더 잘 보는 법이다. 가까이서 보이지 않던 것도 멀리 있는 사람이 더 잘 볼 수가 있다. 그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많은 고향 분들이 이 말에 동조해주리라 믿는다.
작년 여름, 단맛에 취해 몰려왔던 개미들이 새까맣게 죽어있던 꿀단지가 다시 떠오른다. 죽은 개미 위로 자신이 죽을 줄도 모르고 끈적끈적한 죽음의 단지를 향해 계속 밀려오던 개미의 행렬, 그 모습을 보면서 개미나 인간이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문제는 항상 그놈의 꿀, 꿀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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