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청년 최규창 선생을 기리며
이승철 www.yanews.net
2008년 02월 15일(금) 14:10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得)한 세계의 만국 앞에 독립을 기성(期成)하기를 선언하노라’ 로 시작하는 ‘2·8독립선언’이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에서 발표되었다.
그 날 청년학도들의 불굴의 용기와 민족애는 항일학생운동의 효시가 되었으며 우리민족의 독립운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민족청년들의 그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우리지역에서는 3·1운동 이후 학생과 일반 국민이 전국적으로 참여했던 최대 규모의 항일민족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항일학생결사 단체인 성진회를 조직하고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던 최규창 선생을 광주지방보훈청과 광복회 광주·전남연합지부에서는 우리고장 출신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최규창 선생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이던 1926년 11월 당시 광주 부동정 소재 선생의 하숙방에서 광주고보생 장재성과 왕재일 그리고 광주농업학교생 박인생 등 15명과 함께 조국의 독립·사회과학 연구·식민지노예교육체제반대 등을 강령으로 하는 항일학생 비밀결사인 성진회를 조직하였다.
선생은 지용수와 강해석등의 지도로 광주 시내 각급 학교에는 광주고보의 동맹휴학을 주도하여 독립선언의 격문을 살포하는 등 활동하다가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1928년 10월 5일에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성진회에 관련하여 다시 일경에 피체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는 미결기간 중에도 치열한 옥내투쟁을 벌여 민족의식을 과시하였다고 한다.
출옥 후 고향인 영암에 돌아온 그는 일본의 통치 기반에서 이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암농민운동협의회”를 조직하고 농민계몽과 문맹퇴치를 위하여 야학을 설치, 농촌지도자 양성에 전념하였다.
매월 광주지방보훈청에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과 나라사랑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우리고장 출신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여, 잊혀져가는 우리지역의 독립운동가의 삶과 생애를 재조명하고, 그 분들의 위훈을 기리고 있다.
또한 독립운동가의 유족을 초청하여 ‘우리고장 출신 이달의 독립운동가 기념패’수여식을 갖고 그 분들의 공훈을 선양하고 있다. 금번 2월 15일에는 최규창 선생의 자녀 최승호 씨를 모시고 기념패 수여식이 있을 예정이다 며칠 뒤면 온 국민의 희망과 기대 속에 새 정부가 출범한다. 아무리 뛰어난 대통령이 있다 하더라도 나라가 없고, 국민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이 없다면 모래 위에 지어진 성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때 조국 독립을 위해 신명을 다하신 애국 청년 최규창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아 우리 젊은이들도 가슴속 깊이 간직해 보았으면 한다.
/이승철. 광주지방보훈청 보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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