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말의 길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0년 12월 24일(목) 14:39
정찬열 시인 군서면 장사리 출신 미국 영암홍보대사
이른 아침 뒤뜰 창문을 연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들린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새들의 언어를 인간인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다. TV를 켠다. 대통령 후보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설전(舌戰). 말싸움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말’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말이 무엇이기에 그로 인해 싸움이 벌어지고, 행 불행이 갈리고, 생사가 결정되는 것일까.
정현종 시인은 <섬>이라는 시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기도 하지만, 사람이 섬과 같은 존재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사람은 걸어 다니는 섬이다. 생각하는 섬이다. 섬은 외롭다. 그 섬을 이어주는 것이 말이다. 말을 통해 우리는 소통한다. 소통은 말의 역할이자 말의 운명이다. 말이 있어 섬은 외롭지 않다. 그런데 그 역할이 잘못 되면 섬 사이에 소동이 일어난다. 처음엔 둘 사이에 삐걱이다가, 짝을 지어 편싸움이 되기도 하고, 때론 세상이 들썩거리는 사건으로 번지기도 한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가 있다. 말의 바다이다. 파도가 일렁이면, 말의 파고가 높아지면 섬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가 잔잔해야 섬도 평안하다.
말의 뼈는 침묵이다. 침묵하는 동안 말은 단단해지고 여물어간다. 그렇게 정제된 말이 사람의 가슴에 안착할 수 있다. 거르지 않고 날 것으로 날아가는 말은 듣는 자의 가슴에 상처를 주기 쉽다. 홧김에 내뱉는 말은 그럴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래서 선인들은 화가 나면 열까지 센 다음 말을 하라고 했는지 모른다. 홧김에 쓴 글은 그보다 더 위험하다. 흔적이 오래 남아, 상대방의 가슴을 두고두고 후벼 파기 때문이다.
말도 글도 메아리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 돌고 돌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좋은 말은 좋은 메아리를, 험한 말은 험한 열매를 물고 온다. 내가 보낸 것에 몇 배의 이자가 붙어 되돌아오는 수도 있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다.
나무는 나무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개는 개 그림자를 만든다. 마음이 곧아야 말의 그림자도 바르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마음이라는 그릇에서 말이 나온다. 그릇에 담긴 색깔과 내용물에 따라 말의 모양과 향기가 달라진다. 좋은 말이 되려면 어찌해야 될까.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길은 눈과 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더 읽고, 더 듣고, 더 많이 생각하는 길이다.
가을 햇빛을 몸에 바르고 아침 산책을 나선다. 처음 보는 사람이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사람이 가진 고유한 향기는 그의 말에서 풍겨온다. 모르는 사람의 기분 좋은 한마디 인사가 이 아침, 나를 행복하게 한다.
세상을 얻으려면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 길을 말이 만든다. 사람이 말의 길을 만들지만, 말이 낸 길을 따라 사람이 만들어진다. 말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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