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들판에 서서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1년 03월 12일(금) 14:19
정찬열 시인 군서면 장사리 출신 미국 영암홍보대사
며칠 전, 뒤뜰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구덩이를 파다가 깜짝 놀랐다. 삽날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땅 속 뿌리들이 단단히 엉켜있는 게 아닌가. 감나무, 전나무, 대추나무 등이 크고 작은 뿌리를 뻗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때 되면 봄이 오고, 저절로 잎 나고 푸르러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무는 깜깜하고 차디찬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저렇게도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꽃 피고 열매 맺는 일이 그냥 이루어지는 줄 알았느냐고, 삽날에 끊겨 하얀 피를 흘리는 뿌리가 눈 부릅뜨고 인간을 꾸중하는 성싶었다.
그렇다. 봄은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게 아니다. 뿌리의 헌신과 희생이 있어 세상에 봄이 찾아온다. 꽁꽁 언 땅에서 서로 보듬고 쓰다듬으며 기필코 푸른 세상을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저들의 다짐이 있어 봄이 오는 것이다. 때로 삽날에 잘려 비명을 지르면서도 잘린 그 자리에서 다시 뿌리를 내려 뻗어가는 끈질긴 노력이 있어 새 세상은 기어코 오고야 마는 것이다.
겨울비가 내린다. 봄을 재촉하는 비다. 멀리 산마루에 하얗게 눈이 쌓였다. 저 설산 넘어 태평양 건너 고국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민초들의 함성이 실려 있다. 그 외침 속에 거룩한 분노가 서려있고, 정의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동백꽃처럼 붉은 열망이 들어있다. 새 날을 꿈꾸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봄을 갈망하는 뜨거운 절규다.
봄은 온다. 언 땅을 뚫고 매서운 칼바람을 견뎌 내며, 봄은 오고야 만다. 두근거리며 봄을 기다리는 맥박 소리가 천지에 가득하다. 도도히 밀려오는 저 물결을 막을 자 누구인가. 겨울이 바닥을 치고 있다. 우리 집 석류나무도 머잖아 15촉짜리 꽃등을 매달고 뒤뜰을 환히 밝힐 것이다. 산천에 초록이 가득하고 벌 나비도 기뻐 춤 출 터이다.
3월이다.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봄 산천, 3월의 들판에 선다. 보라, 저기 푸른 세상이 달려오지 않는가. 비온 뒤 벌판에 서면 춥고 어두운 세월을 건너와 눈부시게 환한 세상에 도착한 새싹들의 함성이 들린다. 귀가 다 멍멍하다. 졸시, '3월 들판에 서면'을 꺼내 읽는다.
"비온 뒤 햇볕 따스한 오후 / 3월의 들판에 서면 / 귀 밝은 사람은 누구나 / 초등학교 일 학년 선생님이 된다 // 여기저기서 노오란 손을 흔들며 / 저요, 저요, 선생님 저두요, 소리치는 / 새싹들의 시새움으로 // 벌판은 온통 시끌벅쩍한 / 초등학교 일 학년 교실이다 // 어디보자, 오올치 너 쑥 이로구나 / 가만있자 넌 누구더라 / 참, 너는 냉이였지 / 그래 그래 춥고 어두운 땅 속에서 / 얼마나 힘들었니 / 오느라 고생들 했구나 // 선생님 여기요, 소리치며 / 어떤 녀석이 바지가랑이를 붙잡는다 // 아니 넌, 가시풀꽃 아니냐 / 오냐, 오오냐, 이 녀석 / 손 한번 만져보자 // 눈 밝은 사람이면 누구나 / 초등학교 일 학년 담임선생님이 된다 / 비 그친 후 햇볕 따스한 / 3월 들판에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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