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품격은 배려로부터 시작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1년 04월 02일(금) 15:03
조성남 1960년 영암 출생 세한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한국소상공인컨설팅 부회장 한국산학협동연구원 부원장 전라남도문화재위원회 위원 전라남도청년창업몰 심의 및 자문교수
금년에 대학 새내기가 되는 이웃집 아이의 얼굴이 요즘 밝지가 않고 조금 우울해 보였다.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던 때가 얼마 안 되었는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방에 들어가 몇날 며칠을 전화통 붙잡고 대학 관계자와 씨름 중이라는 말을 아이 아버지에게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인즉 대학에 원서접수 할 때는 문·이과 관계없이 전공필수 교과목을 수강할 수 있었는데, 이후 규정이 변경되어 문·이과를 구분해서 수강토록 한다는 것이다. 자율학부로 합격한 그 아이 입장에서는 2학년 진급 시 학과 선택을 폭넓게 하기 위해 반드시 이수하고 싶은 과목이 있는데 참으로 억울하고 답답한 처지가 된 것이다.
학교 측의 잘못이 있음을 관계자도 시인했지만, 규정이 바뀌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학생이 감당하라는 식의 대화를 3주 넘게 진행하고 있던 거였다. 같은 문제로 당혹스러워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더 있는데, 수강 신청 문제까지 부모들이 개입하기도 민망해서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열흘 남짓 지난 후에 아이 아버지를 만나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전화를 했는데 이 사람들이 공 던지기를 하더라고요. 나는 책임자가 아니니 저 사람에게 해라 식으로 떠넘기고 출장으로 자리를 비웠다하고 몇 시간동안 진을 빼놓는데 분통이 터졌습니다. 어른이 전화해도 이럴진대 어린 학생에게는 얼마나 함부로 했겠습니까."
벽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뒤로 하고 우여곡절 끝에 어떤 직원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직원은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알아보고 답을 주겠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상황을 파악한 책임자로부터 간곡한 사과와 해결 방안을 담은 문건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학 신입생인 아이가 고난의 행군을 치렀으나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 아버지는 뜻밖에 서운하고 기분이 상했던 일은 잊고, 친절하게 상담하고 정중하게 해결 방안을 보내준 직원에게 감동하고 있었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여전히 진리인 모양이었다.
일을 하다보면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다.
그 오류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귀찮은 기색으로 문제 해결을 회피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갑질이다. 반면 불필요한 갈등과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배려는 신뢰를 만든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상한 감정을 씻게 된다.
내 이웃을 감동시킨 그 학교 직원처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지수 높은 사람이 많을수록 인간관계에 안도감이 생기고 사회의 품격이 높아진다.
이웃 아이의 일로 필자까지 잠시 걱정과 안도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학기초였다. 그러나 사람간의 신뢰와 품격에 대한 생각을 새삼 환기할 계기를 얻었다. 본 적도 없는 어느 대학의 직원이 나의 창문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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