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이 슬픈 '영암군 향토사'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1년 04월 09일(금) 14:42
1953년 11월 20일 금요일. 박종환 영암군수가 주재하는 기관단체장 회의가 열렸습니다. 6·25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우리 군민들이 바삐 살길을 찾던 그 무렵입니다. 그리고 이날 회의에는 1945년 해방 직후부터 그해 12월까지 영암군 건준위원장을 역임한 석초 조극환(石蕉 曺克煥, 1887.9.14.~1966.4.13.) 선생이 참석 중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영암의 기관사회단체장들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영암군민의 정신적인 자긍 고취를 위해 ’영암군 향토사‘를 발간하기로 하였습니다. 조극환 선생을 추진위원장으로 추대하고 각 기관단체장들을 분과별 편집위원으로 정했습니다. 영암군 역사상 최초로 '영암군 향토사'를 발간키로 한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조극환 선생은 1909년(순종 3년) 2월 18일 영암보통학교 부훈도의 임명장을 받고 내려와 낭산 김준연 등 많은 독립투사를 길러낸 분입니다.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한 이등박문의 제단에 학생들과 함께 사죄하라는 명령을 받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조선독립의 필요성을 통감하였고, 1919년 영암의 3·1 독립운동을 준비하다가 실패한 후 4월 10일 박규상 등과 함께 우리 영암 천지가 들썩이도록 독립만세를 외치신 분입니다. 영암의 3·1 운동 기념일은 실은 4월 10일이고, 이날을 기점으로 조극환 선생의 인생도 안락한 교사 신분에서 감옥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조선의 독립투사로 바뀝니다. 그 뒤로 평생 독립운동에 매진하다가 해방 직후 건준위원장으로 추대되어 초대 영암군수를 역임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1953년 전쟁 직후 조극환 선생만큼 '영암군 향토사' 추진위원장으로 적합한 분은 없었으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66세라는 다소 많은 연세에도 조극환 선생은 고향에 헌신할 마지막 기회로 알고 이 일에 매달렸습니다. 조선시대 군지 등과는 달리 영암의 특성을 살린 '영암군 향토사'를 새로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듬해 봄 박종환 군수가 떠나고 편집위원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면서 '영암군 향토사'는 그가 전담하다시피 하게 됩니다. 행정의 지원이 없다 보니 차츰 그는 군민들에게 향토사 발간을 구실로 용돈이나 얻으러 다니는 노인으로 비쳤을 것입니다.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결국 고령의 연세에 돈마저 떨어진 조극환 선생은 1958년 '영암군 향토사' 자료들을 안고 광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서울로 옮겨간 후 넷째아들 조희석씨 댁에서 1966년 4월 13일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영암군 향토사'는 조희석씨 집에 잠들어 있다가 국가기록원 직원의 눈에 띄어 2017년 3월 나라기록관에 기증됩니다. 그 이름도 슬픈 '전라남도 영암군 향토사 원고(등록번호 CSA0001166)'입니다.
하지만 5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나라기록관에 보관된 '영암군 향토사'는 삭아 문드러지고 결락도 심해 손을 대기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내용이 생각보다 부실했습니다. 국한문 혼용체여서 읽기도 힘들었습니다. 물론 1950년대 영암군청이나 면사무소, 학교 등의 현황이나 각 읍면의 인구 자료 등은 '영암군 향토사'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영암 해창 위쪽의 간척 역사나 군청 앞 장독샘이 양달사 의병장과 연관돼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기록한 자료입니다.
2021년 4월 10일, 영암의 3.1 독립만세운동 102주년 기념일이 다가옵니다. 1919년 4월 10일을 기점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조극환 선생께서 우리 영암을 위해 마지막으로 힘을 쏟았던 '영암군 향토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영암군이나 영암군민의 외면 속에 나라기록관에 잠들어 있습니다.
지난해 말 영암군역사연구회 조복전 회장님께서 앞으로 이 자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전화로 물어 오셨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로서는 답변해 드릴 능력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오늘 영암군과 영암군민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슬픈 '영암군 향토사', 어떻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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