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극장의 추억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1년 04월 16일(금) 14:16
정찬열 시인 군서면 장사리 출신 미국 영암홍보대사
영화 '미나리'가 화제다. 내가 '영화'라는 걸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가설극장에서 상영한 '홍길동전'이었다. 흑백 무성 영화였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깡촌. 영화가 들어온 날, 변사가 무거운 스피커와 베터리를 진 지게꾼을 앞세워 마이크를 들고 선전을 나갔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시종면민 여러분. 오늘 밤 영화는 '홍길동전', 나타났다 사라졌다 신출귀몰 홍길동..."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여러 동네를 돌았다.
그들은 학교 운동장에 말뚝을 박고 천막을 둘러치며 극장을 만들었다. 높은 곳에 확성기를 매달아 유행가를 되풀이하여 틀어 댔다. 산천이 쩌렁쩌렁 울렸다. 조용하던 시골 동네가 갑자기 흥성거렸다. 사람들을 들썩거리게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문화 이벤트였다. 어둠이 내리자 청춘남녀들이 무리를 지어 극장으로 몰려갔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도 질세라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마실을 나섰다. 내가 보채자 어머니는 어린 동생들 때문에 갈 수 없다며 이웃 누나에게 나를 딸려 보냈다.
가설극장은 장터처럼 붐볐다. 발전기 소리가 요란했다. 빙 둘러친 바지랑대 끝마다 전구가 매달려 대낮처럼 환했다. 몇몇 조무래기들은 극장 주변을 뱅뱅 돌며 행여 구멍이라도 있으면 체일을 들추고 들어갈 수 있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극장 측 청년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표를 끊어 입장을 했다. 극장은 사람들로 꽉 찼다. 흙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10분 후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이 몇 번째인데 같은 내용이 또 흘러나왔다. 그러자 "니미 뽕이다 이놈들아, 십 분이 벌써 몇 번이냐" 하며 주먹을 먹이는 사람이 보였다. 맨바닥이라 찬 기운이 올라왔다. 내가 자꾸 몸을 비틀자 누나가 무릎에 앉혀주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모두 일어나 따라 불렀다. 무성영화라 스크린에 뜨는 배우의 입모양을 따라 변사가 대신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변사의 말은 화면의 배우보다 조금씩 늦었다. 빠른 말은 따라잡기 어려웠던지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변사의 목소리나 말솜씨가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했다.
상영 중 몇 번이나 필름이 끊어졌다. 끊어진 필름을 연결하여 다시 시작하는 동안 관객은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이번에는 발전기가 멈춰버렸다. 갑자기 먹방이 되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하늘엔 별이 반짝거렸다. 여기저기서 "돈 내놔라, 내 도온" 소리가 들려왔다. 누나의 무릎에 앉아 졸리면서도 이 광경들을 모두 지켜보았다. 영화가 반쯤 지나자 천막을 허리높이로 말아 올렸다. 돈이 없어 밖에 서성거리던 사람들도 들어와 함께 영화를 보았다.
그 후, '춘향전', '심청전' 등의 영화가 들어왔다. 심청이가 임당수에 빠질 때, 이 도령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 그리고 변사의 멋진 목소리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영화 '미나리' 소식이 내 어린 시절 가설극장의 추억을 불러왔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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