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집 추억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2년 01월 21일(금) 13:41
이진 前) 영암군 신북면장 前) 전라남도 노인복지과장 前) 완도부군수
1970년대 영암군청 인근에 '버드나무집'이라 불리는 조그마한 식당이 하나 있었다. 식당이라기보다는 그냥 선술집이라 할 수 있는 비좁은 가게에 탁자 2∼3개 놓여 있는 소박한 식당이었지만 영암군청에 근무했던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옛정이 진하게 배어 있는 추억의 장소다. 이 식당은 처음에 군청 앞 옛 국제예식장과 문화상회(문구점) 사이에서 할머니 한 분이 선술집으로 시작하였는데 당시 가게 앞에 버드나무가 있어서 '버드나무집'으로 불렸고 그 후 군청 옆으로 자리를 옮겼어도 여전히 '버드나무집'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당시 영암군청 직원들은 '버드나무집'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버드나무집'은 종업원 없이 할머니 혼자서 장사를 했다. 할머니가 이른 새벽 직접 시장에 나가 찬거리를 사다가 반찬과 안줏거리를 만들어 점심과 술을 팔았는데 할머니가 기가 막힌 음식 솜씨를 갖고 계셔서 할머니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낙지 초무침, 맛회, 간자미회, 꼬막무침, 돼지 머리고기 등은 식당을 찾는 모든 이들이 탄복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변변한 주방시설도 갖추어지 않은 비좁은 식당이었지만 손님들은 개의치 않고 할머니가 조리대 도마 위에 돼지머리 고기를 썰어 놓으면 서서 소주를 마시며 집어 먹었는데 당시 군청직원들은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당시에는 카드도 없던 시절이라 '버드나무집'을 이용하는 군청직원들이 과 단위, 계단 위 장부를 만들어 외상 거래를 하고 월말에 정산했었다. 할머니가 글을 잘 읽지 못하신 분이라 장부 기록이 서툴러 군청직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장부에 기록했는데 할머니는 장부 기록을 확인해 보신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군청직원들도 거래명세를 하나라도 빠뜨린 적이 없을 정도로 서로가 신뢰하는 거래를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군청 내 구내식당이 있었지만, 군청직원들은 버드나무집으로 몰려가서 점심을 많이 먹었다. 비좁은 식당이라 밥상을 각각 따로 차릴 수 없어 한 상에 차려 놓고 오는 순서대로 직원들이 빙 둘러앉아 식사를 했고 한 팀이 식사가 끝나면 또 다른 팀이 그 상에 그대로 반찬만 추가해서 식사를 했는데 그 점심이 그렇게 정감 넘치고 맛있었다.
석양 무렵 퇴근 시간이 되면 술 좋아하는 군청직원들이 하나둘 버드나무집으로 모여들어 퇴근 후 일과를 시작했는데 술자리를 시작할 때는 각자 팀별로 시작했지만, 술자리가 진행되다 보면 자연스레 한자리로 모아져 직장 상사들에 대한 애정어린 푸념을 늘어놓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군청 내 돌아가는 소문들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정보 교환을 했고 자리가 익어 가면 영암발전을 위한 거대한 담론을 벌이는 토론마당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리가 끝날 무렵이 되면 일행 중에 거나해진 기분 좋은 친구가 다른 팀 술값까지 전부 계산해 은근히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버드나무집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당시 C모 과장님은 일과가 끝나면 거의 매일 버드나무집으로 출근하시다시피 했는데 평소 술을 좋아하시면서도 안주는 많이 드신 분이 아니라서 조기 한 마리 구워놓고 소주 2∼3병은 거뜬히 마셨고 두 분의 L모 계장님들은 안주라고는 멸치 몇 마리 놓고 소주 한 병을 맥주컵 두 컵에 나누어 따라서 한꺼번에 마신 후 손으로 입을 씻고 일어섰는데 우리는 이를 '오빠시탕'이라고 했다. 당시에 시골에서는 땅벌을 오빠시(일본어 '바치=벌'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라고 했는데 땅벌은 한번 만나 쏘이게 되면 반죽음 상태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벌이었다. 지금은 소주 순도가 많이 낮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소주 도수가 25~30도가 되는 독한 술이었는데 그 독한 소주를 맥주컵에 따라 단숨에 마신다고 해서 '오빠시탕'이라고 했다.
요즘 공무원들은 일과가 끝나면 직장 상사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퇴근을 하지만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군사문화가 지배했던 당시에는 일과가 끝나도 과장님들이 퇴근하지 않으시면 전체 직원들이 퇴근하지 못하고 사무실에 서성거리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눈치 없이 퇴근을 뭉그적거리는 과장님을 보다 못한 계장이나 직원들이 서로 눈짓을 해서 소주 한잔하시자고 부추겨 과장님이 마지못한 듯 일어서시면 과장 접대 당번 계장(?)이 버드나무집으로 모시고 가고 다른 직원들은 해방되어 퇴근을 했었다.
필자가 영암군청에 근무하다 자리를 옮긴 후 1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와 버드나무집이 궁금해 물었더니 할머니가 연세가 높으셔서 식당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할머니는 식당일을 접고 인천에 있는 아드님 댁에 계시다가 작고하셨다고 한다. 언제나 수더분하고 다정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새삼스럽게 지나간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세월은 흘러 그때 그 동료들은 모두 퇴직을 해서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그때 그 시절 나누었던 따뜻한 정은 지금도 우리들 가슴에 그대로 남아 우리를 추억 속으로 이끈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밤 술자리를 벌여놓고 뽀얀 담배 연기 속에 열기 넘치는 토론을 했던 그 밤이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 가슴을 적셔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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