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 정기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2년 03월 11일(금) 11:47
정찬열 군서면 도장리 출신 미국 영암군 홍보대사
초등학교 시절, '큰 바위 얼굴'이라는 글을 교과서에서 읽었다. 반세기 전쯤의 일이다.
어느 골짜기에 성자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었다.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이 지방에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을 듣는다. 소년은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 기대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지방 출신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 잘하는 정치인, 글 잘 쓰는 작가를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저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어린 나는 이 야기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미국에 건너와 살게 되었다. 어릴 적 읽었던 글이 생각날 때마다 뉴헴프셔주 화이트마운틴에 있다는 큰 바위 얼굴을 가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큰 바위가 폭풍으로 인해 무너져버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2003년 5월이었다. 안타까웠다.
몇 년이 지난 2009년 1월, 큰 바위 얼굴이 한국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남 영암 월출산에서 발견됐다는 기사였다. 사진작가 박철이 발견했단다.
그 해, 도보 국토종단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박철 작가를 만났다. 큰 바위 얼굴을 발견하던 날의 얘기를 들었다. 산에 홀린 사람처럼 30년 넘게 월출산 사진을 찍어오던 어느 날 정오 무렵, 천황봉에 올라 건너편 구정봉을 바라보는데 그 큰 바위가 홀연히 사람 얼굴형상으로 눈앞에 나타나더란다. 놀라움과 감동이 그대로 전해왔다. 누만 년 동안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그 시간 그에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국토종단 중 아내와 함께 월출산 천황봉에 올랐다. 맞은편 구정봉을 바라보았다. 큰 바위얼굴이다. 머리, 이마, 눈, 코, 입이 또렷하다. 턱에서 정수리까지 길이가 101m. 세계 최대 크기다.
미국에 있던 바위가 사라진 후, 그보다 일곱 배가 넘은 큰 바위얼굴이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큰 바위 얼굴은 하늘이 열린 날, 태양이 불러낸다. 하늘의 기운을 받아 세상을 이끌어갈 큰 사람의 등장을 예고해주는 징후로 보인다. BTS를 비롯 한국문화가 세계를 리드하는 현상이 그 증거가 아닐까.
월출산은 남한의 금강산이라 부른다. 기암괴석으로 덮인 아름다운 산이다. 박철 사진작가는 백번도 넘게 그 산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다. 평생 큰 바위얼굴을 흠모하여 살아온 어니스트 소년이 결국 큰바위 얼굴이 되었듯이, 월출산 큰 바위 얼굴이 그에게 모습을 보여준 것은 한 사진작가의 정성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을까.
새해가 시작되었다. 한 가지 일에 오래 정성을 쏟으면 하늘이 감동한다. 올해는 우리 땅 큰 바위의 기운을 받아 모두가 큰바위 얼굴이 되면 좋겠다. 큰 바위 얼굴 닮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닌가. 월출산 큰 바위 얼굴이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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