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감사와 평온으로 채울 시기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2년 03월 25일(금) 11:44
조성남 세한대학교 교수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 소상공인지원특별위원장 한국소상공인컨설팅협회부회장 한국산학협동연구원부원장
비가 내리는 아침, 딸과 함께 집 가까운 5일장 구경에 나섰습니다.
코로나로 나들이 인파가 줄어든 시기에 비까지 내리니 시장은 한산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계신 시장 상인들의 얼굴빛을 조심스레 살피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연로 하신 데다 노점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인지라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걱정이고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환경이다 보니 감염도 염려되었습니다.
들르는 곳마다 조금씩이라도 사드리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고 '고생이 너무 많으시네요~ 많이 파세요!'라고 인사를 드렸지만 미안함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한 어르신께서 "오늘이 이라먼 내일은 괜찮을 것이여. 날마다 좋기만 하간디 그래도 일할 수 있는 것이 어디여"하시며 오히려 저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현장에서 주시는 극복의 언어는 진리이자 경구입니다.
어려움도 감사로 녹일 줄 아는 지혜가 오일장의 버팀목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소와 해산물 등 식재료 사담은 비닐봉지 몇 개 들고 버스승강장을 지나며 마음 따듯한 풍경을 보기도 했습니다.
영암군에서 시장에 파견하는 '나르美' 두 분이 시장구경 나온 어르신들의 무거운 짐을 손수레에 실어 차량에 옮겨드리고 있었습니다.
버스에 오르시는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주니 빗속에서 고생스럽게 짐을 들고 다니시지 않고 몸가볍게 차에 오르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어르신들은 버스 속에서는 연신 "워따 감사하요~", "애썼네이~"라며 치사하시고 나르美들은 "아따 추와도 나오신께 우리가 감사하제라", "어르신 건강하십쇼~ 담장에 또 봅시다~"라고 인사하는 목소리가 화톳불처럼 따뜻하게 가슴을 채워주었습니다.
저 감사의 인사가 자칫 암울하고 불운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이 시간을 이겨내는 원동력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스의 대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가 성미 고약한 악처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누가 있건 없건 남편의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난폭한 말로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하면 곁에서 듣기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견디고 사는지 지인들이 묻자 소크라테스는 "내 아내의 성질을 참고 견디어 낸다면 천하에 다루기 어려운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시끄러운 물레방아 소리도 참고 듣다보면 익숙해진다네."라고 했답니다.
개인사에서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누구나 '크산티페'를 곁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코로나와 같은 재앙, 자신이 가는 길을 훼방하는 이웃, 추구하는 뜻을 비웃는 지인, 선하게 대해도 악하게 대응하는 관계들, 부모 마음에 합당치 않게 살아가는 자식, 성실한 서민들이 맥락 없이 당하는 사회적 불공정 등이 우리와 동행하는 크산티페겠지요.
소크라테스가 좋은 남편임에도 부당하게 아내의 가정폭력을 당했는지, 크산티페가 난폭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공한 함량 미달의 남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후세의 견해가 분분합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소크라테스는 참을 수 없는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분노라는 감정에게 내주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결혼생활을 지키고 자기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은 셈입니다.
저는 시장에서 돌아온 후에도 불행과 감사가 서로 길항하는 우리 삶에 대한 생각을 좀 했습니다. 불가항력의 재난이 닥친 경우일지라도 5일장에서 꽃피던 긍정과 감사,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정신의 균형이라는 교훈은 적용하는 게 좋겠다 했습니다.
감정의 뿌리인 생각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삶의 자리에 붙들어두면, 감정은 자연히 건강하고 밝게 표현될 것입니다.
대선 후에 울화를 표현하시는 분들을 간간히 만나게 됩니다. 우리나라, 우리 생활을 더 낫게 해줄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해서 지지했던 후보가 당선되지 못한 것에 대한 낙심과 분노의 감정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크라테스처럼 이 과정을 받아들이고 다스리고 개인적인 평화를 회복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보니 다윗이 어린 아들이 병들어 앓을 때 산발한 채 금식하고 울부짖어 기도했는데 아들이 죽은 후에 오히려 말끔하게 씻고 식사를 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더군요. 이상하게 여기는 신하들에게 다윗은 "내가 기도했지만 아들은 죽었다.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이제 일상에 충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는 의미의 답을 했습니다.
어느 후보를 지지했건 대선은 우리가 열정적으로 좋은 나라를 꿈꾸었던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결과가 정해졌으니 그 또한 감사하고 다음 행보를 잇는 평온의 힘이 흘러넘치기를 바랍니다. 비 내리는 오일장의 힘과 따뜻함처럼 말입니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이 기사는 영암군민신문 홈페이지(yanews.net)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yanews.net/article.php?aid=3714264690
프린트 시간 : 2024년 09월 20일 07: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