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우리 집에는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
2022년 04월 01일(금) 13:31 |
동이 트면 우리 집에서는
바람이 가위를 들고 구름을 자르는 것이 보였어요
그리고 환하게 동쪽하늘이 열렸고
오색 닭들이 반드시 깨어지고 말 지구를 쑥 낳았어요
빗자루 중에서는 이따금 잎이 돋고
꽃이 피는 것도 있었어요
열두 달 필요한 달은 돌담이나 지붕이 키웠지요
밤이면 언니는 샛강에 목욕을 가고
담은 밤마다 길이가 늘어나고 또 어떤 담은
밝은 귀를 가졌지만
우리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지요
구들장 밑에 숨어있던 짐승들은 저녁마다 캄캄한
산 쪽으로 날아가고 아궁이에 군고구마가 익어가고
부뚜막 위 고양이가 잔털 몇 올을 후 불었지요
그 땐 요즘 애들은 전혀 모르는 요즘 애들이 살았지요
된장 단지 속에는 흰 밥알 몇 개가 꿈틀거리고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주워내면서
장이 제 몸에서 키우는 것이니 괜찮다고 하셨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우물로 가셨어요
우물에는 깊은 메아리가 살았지요
빈 두레박이 내려가면 저 물밑에서도 첨벙 하고
한참 후의 시간이 대답을 하곤 했어요
들여다보면 소리는 점점 깊어지고 캄캄한 우물 속에는
누군가 어른 거렸어요
그 옛날 우리 집에서 함께 살던 것들이에요
정정례
2020년 월간 유심 신인문학상
제26회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제5회 천강문학상 수상
제3회 한올문학상 수상
현 한국미술협회 이사
시집 '시간이 머무른 곳' 외 다수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