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영암산성' 흔적 산재 氣 체육공원 등산로 산성대 주변 일대 성문지 성벽 기와 파편 등 확인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
2022년 06월 03일(금) 13:32 |
특히 곧 출범할 민선 8기에는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현창 사업과 영암성 복원 사업을 통해 영암지역 역사문화의 관광 자원화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영암성과 함께 월출산 영암산성에 대해서도 전문적 조사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양달사현창사업회 이영현 사무국장은 <영암군민신문> 고정칼럼(‘낭산로에서’)에 투고한 ‘영암산성을 찾아서’라는 글을 통해 “우리 선조들은 외적이 몰려오면 월출산으로 피신했다. 산 위로 올라가 투석전으로 적을 물리쳤고, 그러다 사람이 많아지자 중턱에 산성을 쌓았다. 축성에 공을 들이지 않아도 외적이 접근하기 어렵고, 많은 사람이 피신할 수 있는 주능선 산중턱에 산성을 만들었다. 공간이 다소 비좁고 물이 적어 고려 말부터 평지에 영암성을 만들었지만, 영암산성은 적어도 백제 시대 이전부터 영암군민들의 목숨을 지켜준 성스러운 산성이었다. 그럼에도 영암산성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고 아쉬워하면서, “氣 체육공원 등산로 중간쯤에 위치한 산성대는 산성 돈대, 산성의 전망대, 산성의 망루 등을 뜻하며, 그동안 몇 차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산성대 주변에 기와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11면>
이 사무국장은 특히 “지난 5월 23일 영암문화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이들과 영암산성 탐방에 나선 결과 겉쌓기 된 약 10m 가량의 성벽과 주능선 중앙 암벽에 개거식 성문이 있었음직한 구멍, 성문지 뒤쪽 100여평 남짓한 평지, 도처에 흩어진 수많은 기와 파편들을 발견했다”면서, “그럼에도 영암산성의 기록이 없는 이유는 고려 말부터 영암성을 쌓기 시작해 쓸 만한 성돌들을 골짜기로 굴러내려 영암성 축조에 사용했기 때문에 성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에 “영암산성은 시종면 성틀봉산성에 이어 가장 오래된 산성으로서 1천여년 동안 영암군민을 지켜준 어머니 같은 산성”이라면서 “민선 8기에 영암성과 함께 전문적인 조사를 시행한 후 망루와 빗물을 담은 저수조, 봉수지 등을 복원, 영암성과 함께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