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넘어 국치일을 생각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2년 07월 22일(금) 13:46
정찬열 군서면 도장리 출신 미국 영암군 홍보대사
8월이 다가온다. 15일은 광복절이다. 무엇으로부터 광복인가. 일본 압제로부터 해방이다. 8월 29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는가. 국치일이다. 8월이 오면, 광복절은 생각하지만 국치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부끄럽기 때문에, 내보이고 싶지 않는 치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먼지를 털고 국치일을 역사의 창고에서 불러내야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쓰디쓴 쓸개를 꺼내어 핥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 된 도리다.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빌미로 자국 군대를 한반도에 주둔시켰다. 그 후, 을사 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하더니 급기야 고종을 내 쫒고 순종을 왕에 앉혔다. 사법 행정권을 차례로 빼앗아갔다. 그들은 결국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 발효된 한일합병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한일합병조약 제1조는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제2조는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조항에 기재된 양여를 수락하고,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함'으로 되어있다.
'일본국 황제폐하'는 이 양여를 '승낙'했다. '한국 황제폐하' 순종은 칙서를 내렸다. "허약한 것이 고질이 되고 영락이 극도에 이르러 회복시킬 가망이 없으니… 너희들 관리와 백성들은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이로써 5백년 사직 조선은 망했다. 이 일을 위해 애쓴 이완용 송병준을 비롯한 조선의 대신들과 귀족들은 넉넉한 포상을 받았다.
제1조의 '완전히 또 영구히'라는 일곱 글자를 읽어가면서 나는 헉, 하고 가슴이 막혔다. 시비를 틀어막아 영구히 식민지로 삼겠다는 이 조항을 보면서, 당시 조선 백성이 느꼈을 절망감을 짐작할 수조차 없다. 일본은 조선의 운명을 영구히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어버렸다고 단정했을까.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을까. 모를 일이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 선조들은 피와 땀으로 36년간 뒤틀어진 역사의 물길을 바로 잡았다. 해방이 된 것이다. 목숨 바쳐 독립운동에 앞장선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덕택이다. 유관순 누나가 생각난다. 유관순은 우리들의 영원한 누나이다. 그녀는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열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나이 열여섯 살 때였다. 그 시위에서 일본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쏜 총에 맞아 부모가 숨졌다. 유관순은 일경에 체포되었다. 고문을 받던 중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졌다. 일제의 기록에 의하면 그녀의 사인은 '자궁파열'이었다. 어떤 고문으로 어떻게 그녀가 숨지게 되었는지 일제의 잔인함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8월이 다가온다.광복절 다음에 국치일이 온다. 금년 8월은 광복절과 국치일을 한 번씩 더 깊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신채호 선생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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