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이 되어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
2022년 08월 26일(금) 11:20 |
정찬열 |
월출산 등산길 옆 우물에 걸린 작은 두레박
목마른 당신이 땀을 닦으며 나를 찾으시면
끈을 타고 바닥까지 내려가
맑은 물 길러와 당신께 바칩니다
쩍쩍 갈라진 마른 논바닥 같은 가슴에
꿀꺽 꿀꺽 물길 번져가는 소리를 들으며
내 눈시울도 함께 젖어갑니다
당신은 갈증을 채우고 나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십니다
또 오리라는 기약도 없지만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세월
우물에 기대어 날밤 새워 당신을 기다립니다
일 년, 이 년, 삼 년....
당신을 맞이하고 보낸 세월이 어느새 15년
나와 입술을 맞춘 수많은 당신의 얼굴
그 촉촉했던 순간들 차마 잊히리요
덕분에 천왕봉 오르는 길이 더 반질반질해 졌습니다.
하늘의 주인이 바뀌고 산마루에
보름달 두둥실 떠오르던 어느 밤
월출산 큰 바위 얼굴님이 나를 부르더니
“아가 두레박아, 그렇게만 꼭 그렇게만
앞으로 천 년을 살아라 잉!“
환하게 웃으시며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습니다
*정찬열
/군서면 도장리 출신, 미국 영암군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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