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끄자 세상이 열렸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3년 02월 03일(금) 11:58
김기천 학산면 거주 농민 전 영암군의회 의원
텔레비전을 끈 지 석 달째다. 무슨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밤사이 뉴스거리가 궁금해서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켜는 날이면 속이 시끄럽고 하루가 무기력했다. 일과를 마친 저녁, 텔레비전을 켜면 생생한 생각들이 자취를 감추고 공허해지는 것이었다. 한해 농사를 매듭짓고 마침내 얻은 꿀같은 농한기를 그냥 보낼 수 없단 갈증이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마음 가는 대로 텔레비전 전원을 봉인해버렸다. 한 사나흘은 갑갑하고 조바심이 났다. 밤새 생긴 일을 나만 모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아닌 걱정이 꿈틀댔다. 금단현상이었다. 그 사이 '재벌집 막내아들'이란 드라마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카타르 월드컵의 열기가 한껏 달아올랐지만 애써 무시하며 버텼다.
처음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사로 억세진 손과 발만큼 머리는 단단하게 굳어 있었고 두 눈을 짓누르는 졸음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30분을 버티기 힘들었다. 다행히도 시간은 널널했다. 억지로 「총 균 쇠」를 완독하고 <독서 후 생각모음>이란 이름의 기록을 시작했다. 마침내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짬이 나면 책이 손에 들렸고 멋진 문장을 쫒다보면 재미난 상상들로 온몸이 전율했다. 무엇보다 내게 '여유 공간'이 생겼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니치(niche)', 우연히 발생한 작은 공간이라 하는데 니치가 풍부한 생태계는 종의 다양성이 높아지고 생명의 안전성도 높아진다) 텔레비전 대신 책을 손에 쥔 덕분에 나는 고정관념과 강박에 붙박힌 세상에서 조금 놓여날 수 있게 되었다.
「총 균 쇠」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중국이 아닌 유럽이 문명을 압도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최적 분열의 원칙'을 그 한 근거로 들었다. 분열된 유럽은 박해받는 개혁자에게 피난처와 여러 지원책을 제공하고 각 나라 사이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기술과학, 자본주의의 진보를 이룬 반면 통합된 중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논리다. 정치적 분열이 경쟁을 위한 건설적인 토론의 장을 제공해왔단 의미로 혁신은 분열의 최적에서 중간 정도에 머문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지나치게 통합되었거나 너무 분열된 사회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대단한 혜안이자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불규칙 정도를 나타내는 '프랙털 지수'도 의미심장하다. 흰 종이 상태가 지수 1이고 낙서가 심해져 완전히 검게 변한 상태를 지수 2라고 하는데 1.4정도의 수준이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단계라는 것이다. 완전한 규칙도 완전한 불규칙도 아닌 적당한 불규칙 상태를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숲을 생각해보라. 나뭇가지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규칙이 있고, 나뭇잎은 모양은 달라도 녹색으로 통일되어 있는데 이같은 불규칙한 숲을 보며 인간은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것이다.
돌아보면 다양성과 불규칙성이 제거된 단일한 통합 세상을 도모하는 자들은 권력자 뿐이었다. 그래야 권력이 온전히 그들의 몫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개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래사회의 요구와 전혀 상통하지 않는다. 말로는 통합과 포용을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외치는 자들이 대결과 배제, 혐오를 부추켜온 사실은 만천하가 아는 일이다. 그 결과 중앙과 지방 가릴 것 없이 특정 정치세력, 아니 특정 이해집단의 독과점 시대가 만개하였다. 평범한 시민이 누릴 작은 '여유공간'도, 더 다양한 세상을 위한 불규칙한 목소리도, 주류가 아닌 소수자의 몸부림도 야멸차게 매장시키는 세상에서 평민은 숨을 죽인 채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 본령이 사라지고 사나운 권력욕만 남은 자리에 '도둑정치'가 똬리를 튼 것은 당연한 결과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앞의 책에서 도둑정치와 현명한 정치를 비교하면서 날강도에 가까운 폭군과 대중에게 은혜를 베푸는 성군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결국 생산자들에게서 거둬들인 공물 중 얼마만큼 엘리트 계급이 가져가고 그 공물 중 얼마만큼이 공공용도에 사용되어 평민들에게 재분배되는지가 관건이란 것이다. 쉽게 말해 도둑정치가는 대중이 좋아하는 일에 많이 재분배하여 대중을 기쁘게 하는 방식으로 지배체제를 구축해온 것이다. 대중을 몇 푼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도둑정치가의 올가미에 우리는 꼼짝없는 포로 신세가 돼버렸다.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책을 읽는 일로 해방일지를 시작했다. 작은 시작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큰 해방을 선물했다. 새해를 맞으며 세상이 더 다양한 생각으로 개성 넘치고, 다른 목소리에 더 상냥한 공동체를 꿈꾼다. 부패한 권력 독점자들을 향해 결기를 곧추세우는 움직임이 새벽 수탉 횃소리처럼 요란해지길 소망한다. 내 아이에게 목표를 향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랏! 하기 전에 청춘의 때가 저물어져 가는 우리 자신의 삶에 애정을 다시한번 듬뿍 쏟아붓는 부모세대의 해방을 갈망한다. 불평등한 세상 질서를 비틀고 기득권을 뒤엎는 청년세대의 유쾌한 반란까지 보태진다면 이보다 더 큰 해방이 어디 있을까?
마침 학산에 작은 도서관이 개관했다. 반갑고 가슴 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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