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찬열의 산티아고 순례길 2천리 <6>'용서의 언덕' 페르돈,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계속)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
2023년 06월 02일(금) 14:53 |
끝 없이 펼쳐지는 유채밭 전경. 저 멀리 아스라히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내가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을 차근차근 기억해낸다. 고향 산자락에 누워계신 우리 아버지. 또래들이 학교를 가는데 지게질하며 농사를 짓던 어린 시절, 가난이 모두 아버지의 탓인 양 많이도 원망했었다. 우리 어머니. 나는 왜 그렇게 어머니에게 따뜻한 아들이 되어드리지 못했을까. 내 동생, 친구, 그리고 또….
오래 전의 일들이 하나씩 눈앞에 펼쳐진다.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다 아리다. 그리고 눈물이 쏟아진다. 그들 앞에 무릎 꿇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다.
내 가슴에 맺혀 있던, 생각하기조차 싫은 얼굴을 떠올린다. 한 사람씩 불러내어 그 때 왜 그랬냐고 따져 묻고, 멱살을 잡아 뺨을 한 대씩 후려치고 나니 가슴이 다 후련하다. 신발에 붙어있던 진흙덩이가 떨어져나간다. 아, 그래도 그 중 몇은 도저히 용서 할 수가 없다.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기도가 부족한 모양이다. 이 순례길이 끝나기 전에 그들을 용서하는 은총을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페르돈 언덕, 790m 높이의 꼭대기에 다달았다. 순례자들의 모습이 청동으로 만들어 주욱 세워져있다. 말을 타고 가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 어린아이, 강아지 모습까지. 이 기념물은 1996년 '나바라 까미노 친구들 연합'에서 세웠다. 기념비에 "별들이 바람에 따라 흐르는 길"이란 글이 적혀있다. 나도 '바람 따라 흘러가는 별'인가.
언덕을 내려간다. 저만치 앞서 걸어가던 아내가 갑자기 다리를 절뚝거린다. 무릎이 아프단다. 진흙구덩이를 올라오느라 무리했던 탓일까. 조심조심 옆걸음으로 내려간다. 출발하면서 "나는 문제가 없는데 당신이 걱정"이라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저렇게 문제가 생겼다. 남은 일정이 창창한데 다 마칠수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산 아래서 대한이 엄마 일행을 만났다. 무릎이 아프냐고 묻더니 무릎 붕대를 꺼내주신다. 붕대를 감고 나니 한 결 낫다고 한다.
개를 두 마리씩 데리고 일가족이 걸어가고 있다. 페르돈 언덕을 넘어오면서 마음에 쌓인 찌꺼기를 다 씻어버린 탓인지 강아지 얼굴까지 다 환하다. 잠은 어디서 자는지 물었더니 알베르게나 공공건물의 잔디에 텐트를 치고 잔다고 한다.
언덕 모퉁이를 돌아서니 유채밭이 나타난다. 노랗게 꽃이 핀, 끝이 보이지 않는 유채밭이 장관이다. 들판이 끝나면 마을이고, 마을을 지나면 다시 들판이다. 철로 만든 야고보 성인의 동상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세워져있다.
마을 좁은 골목 양쪽에 돌로 지은 오래된 집들이 늘어서있다. 낡았지만 관록을 과시하고 있다. 문 앞 손잡이로 걸려있는 조각품 하나가 집 주인의 품격을 보여준다. 귀족들이 살던 마을이라 했다.
오바노스Obanos를 지난다. 이 마을은 '오바노스의 신비'라는 전설로 유명한 마을이다.
카미노에서 일어난 아키텐의 공주 펠리시아Felicia와 그녀의 오빠 길레르모Gillermo 공작에 관한 이야기인데,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순례자>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오랜 옛날 프랑스 남부에 있던 아키텐 왕국의 공주 펠리시아가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사는 가난한 주민들과 순례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왕이 아들 길레르모에게 여동생을 데려오도록 명령한다. 오빠 길레르모가 동생을 만나 설득을 했지만 끝내 거절한다. 이에 순간적으로 격분한 오빠가 동생을 살해하고 만다. 오빠는 순례길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자신의 행동을 크게 뉘우치고 회개하여 동생이 하던 일을 계승하기로 결심한다. 길레르모는 이곳 오바노스에 정착해 성당을 세우고 가난한 이, 병든 이, 순례자를 위한 삶을 살았으며,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워낙 오랜 역사를 가진 길이라 마을 따라 길 따라 여러 가지 전설들이 전해오고 있다. 오늘의 목적지 Puente la Reina에 도착했다. Puente la Reina는 '왕비의 다리'라는 의미다. 강물에 휩쓸려 해마다 많은 순례자들이 죽어간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11세기에 '마요르 왕비'가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 후 순례자들이 편하게 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고, 도시 이름이 그로부터 비롯되었단다.
마을 입구 알베르게가 만원이다. 다른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큰 길을 따라가는데 고색창연한 건물과 성당이 세월의 무게를 전해주고 있다. 어, 가다 보니 다리입구에 다달았다. '왕비의 다리'다. 돌로 만든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리다. 그 옛날 어떻게 이런 다리를 만들어 냈을까.
전에는 이 다리 위에 쵸리Txori의 성모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쵸리(바스크어로 '작은 새'라는 뜻)가 규칙적으로 날아와 부리로 성상의 얼굴을 청소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그 성모상이 지금은 이 마을 San Pedro 성당으로 옮겨 모셔있고, 오늘날 이 마을 축제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목이 마르다. 다리 밑으로 내려가 흐르는 저 물을 마음껏 마시면 딱 좋겠다. 그렇지만 물을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 특히 이지역의 물은 그렇다. 12세기에 이 길을 걸었던 비코라는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이 곳에서 멀지 않은 살라도라는 강은 마시면 안 되는 물로 설명되어있다. 비코 일행이 그 강가에 도착했을 때, 나바로 사람 둘이 강둑에 앉아 칼을 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단다. 말에게 물을 먹여도 좋은지를 그들에게 물었는데 괞찮다고 했다. 그런데 말에게 물을 먹이자 그 자리에서 말이 죽었다. 두 명의 나바로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죽은 말들의 가죽을 벗겼다고 한다. 비코는 나바로 사람들이 동물과 성행위를 하더라는 내용도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 오래 전에 쓴 기행문이 전해져서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기록이란 게 그렇게 소중하고도 무섭다.
그런데 살라도라는 이름은 '짠 맛이 나는'이라는 뜻으로 비코가 언급한 이후로 바뀌지 않고 있다. 후대의 일부 역사가는 비코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말들이 살라도 강물을 마시고 죽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한다. 강물이 짜고 맛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말이 마시고 죽을 정도의 독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리 건너 언덕 위 알베르게에 배낭을 풀었다. 4시 30분 도착. 힘든 하루였다. 보통은 8유로인데 독방을 사용하면 10유로다. 저녁 식사는 순례자메뉴로 9유로다.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꿀맛이다. 건너편 테이블에 한국 여자 한 분이 앉아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영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이교수인데, 남편에게 아이들 맡겨두고 혼자서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저녁 식사시간. 각국에서 온 100여명이 한 자리에 앉았다. 옆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와인이 한 잔씩 돌아가자 분위기가 무르익어간다. 포도농장이 많아서인지 와인 인심이 좋다. 두어 잔을 마셨다. 한국인은 우리 부부와 김상교 사장 부부, 그리고 이교수, 다섯 명이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마드리드에서 왔다는 도마스란 분이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더니, 스페인 노래를 한곡 걸쭉하게 뽑아낸다. 노래솜씨가 웬만한 가수 뺨치는 수준이다. 여기저기서 휘파람을 불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분위기에 취한 탓이었을까. 이번엔 내가 벌떡 일어섰다. 내 소개를 한 다음, 진도아리랑을 한 곡조 불렀다. 박수가 쏟아졌다. 그런데 흥이 남았던 모양이다. 청중에게 한국의 전통 음악인 아리랑을 한 번 배워 보겠느냐고 물었더니 또 박수를 친다. 내가 선창을 하고 모두 따라 부르게 했다. 두어 번 반복했더니 금방 따라서 부른다. 아리랑이 가사는 물론 곡도 외국인이 따라하기에 쉬운 노래인 성 싶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나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 스페인 하늘에 우리 아리랑이 흥겹게 울려 퍼진다. 노래를 끝내고 앉았더니 앞자리에 있던 이 교수가 "정 선생님, 애국하신 겁니다." 짤막하게 농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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