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찬열의 산티아고 순례길 2천리

<7>뿌엔떼 라 레이나서 에스텔라, 로스 아르꼬스까지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3년 06월 09일(금) 15:22
시골 마당에 놓아 먹이던 한국의 토종닭과 똑 같다. 나뭇가지로 살살 몰아가고 있다.
'왕비의 다리'가 아침햇살에 빛난다. 석양에 보던 다리와 아침에 마주하는 다리가 달라 보인다.
돌로 지은 2층 건물,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나부낀다. 장대를 세우고 빨래 줄을 길게 걸어 마당에 옷을 말리던 풍경이 떠오른다. 식구가 몇이나 되는지, 남자가 몇이고 여자가 몇인지 널려있는 빨래를 보면 짐작이 간다. 햇빛에 뽀송뽀송 빨래를 말리는 모습이 참 오랜만이다.
마을을 벗어나자 밀밭이 펼쳐진다. 밀이 동이 배었다. 밀 하나를 뽑았다. 동이 밴 밀은 임신한 여인의 몸매처럼 둥그스름하고 매끈하다. 말랑말랑한 이놈이 나날이 단단해져, 머리를 풀고 피어나 햇빛을 받으며 익어갈 것이다. 저렇게 푸르디푸른 밀밭이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들판이 된다. 시간은 그렇게 색깔을 바꾸어놓는다.
연분홍 벚꽃이, 노랑색 배추꽃이 길목에 피어 순례자를 반긴다. 배추꽃들이 열병식장의 군인처럼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서 환영의 박수를 보낸다.
시골 마당에 놓아 먹이던 한국의 토종닭과 똑 같다. 나뭇가지로 살살 몰아가고 있다.
시골 마당에 놓아 먹이던 한국의 토종닭과 똑 같다. 나뭇가지로 살살 몰아가고 있다.
농부가 닭을 몬다. 토종닭이다. 닭도 우리네 것과 비슷하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들고 닭을 살살 몰아나가는 저 모습도 낯이 익다. 사람 사는 모습은 저렇게 어디나 비슷하다.
Cirauqui 마을 카페가 보인다. 먼저 온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카페옆 작은 입석이 눈길을 끈다. 1658년에 세워진 문양석이다. 마을의 길들이 폭이 5~7m쯤 되고 가운데가 약간 볼록하게 만들어 물이 잘 빠지도록 만들어져 있다. 프랑스 Bu rdeos에서 Astroga까지 연결되었던 로마시대 대로의 흔적이라고 한다. 로마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길을 잘 만들었다는데 그 흔적이 여기까지 남아있다. 마을 옆을 지나가는 넓게 뚫린 시원한 현대식 고속도로와 비교가 된다.
자기나라 국기를 등에 달고 걸어가는 불가리아 여학생 두 명을 만났다. 기특하다.
자기나라 국기를 등에 달고 걸어가는 불가리아 여학생 두 명을 만났다. 기특하다.
많은 마을이 성처럼 높은 곳에 있다. 마을을 벗어나는 언덕길에서 여학생 두 명을 만났다. 불가리아 출신인데 호주에서 유학중이라고 한다. 두 녀석이 자기나라 국기를 배낭에 걸고 순례길을 가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길을 걷고 있는데 자국 국기를 걸고 걸어가는 처음이다. 기특하다. 불가리아의 미래를 보는 듯싶다. 작년에 한국 청년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미대륙 횡단을 했었는데 그 때, 그들도 태극기를 달고 횡단했었다.
농부가 포도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포도순을 따주고 있는 모양이다. 순례길을 시작한 이후 농부가 일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 밭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 길이 이어진다. 올리브 농장을 지난다. 저 늙은 올리브나무는 몇 백 년이나 되었을까. 성서에 올리브유가 자주 언급하는 이유를 알겠다.
아내는 어디쯤 걸어가는지 모르겠다. 이 나라는 관개수로가 잘 되어있다. 땅속으로 땅 위로 거미줄처럼 물이 흐르는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미국에서 온 아주머니를 만났다. 쥬디, 켈리포니아 세크라멘트에 산다고 한다. 친구 중에 한국 사람이 몇 명 있다며 반가워한다. 그들과 함께 한국 미장원이랑 찜질방에도 가 보았다고 한다. 한국식당에 가서 불고기를 먹었던 경험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한참동안 함께 걸었다.
프리웨이 밑 굴을 지나간다. 굴의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다. 주위환경에 맞춰 아치형으로 만들었다. 건물은 물론 다리 난간, 그리고 굴 밑으로 지나는 길까지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이런 것들이 모여 국격을 이룬다.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아이들이 나와 놀고 있고, 부모들도 함께 거닐고 있다. 알고 보니 오늘이 메이데이 휴일이란다. 5월 1일. 2005년도 이 날은 내가 평양에 있었다. 그 날도 많은 평양 시민들이 시내에 쏟아져 나와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메이데이는 세계적인 명절이 되고 있는가 보다.
카페 입구에 '어서 오세요' 한글로 손님을 안내하고 있다. 이 길을 걷는 한인이 많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한국인은 별로 많지 않다.
오늘의 목적지 에스텔라Estella. 중년 부부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산책을 하고 있다. 공원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며 담소를 나누는 노 부부가 정답다. 강이 흐른다. Ega강이라 했다. 강을 따라 로마시대 때 만들었다는 수로가 함께 흐른다. 수량이 꽤 많다.
이 도시는 1090년에 나바라 왕국의 왕이 늘어나는 순례객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천 년 전쯤의 일이다. 프랑스 장인들이 오늘날 Pua de Curidores라 부르는 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놓아 까미노 중에서 가장 산티아고를 잘 느낄 수 있는 도시라고 했다. 15세기 순례자들이 ‘아름다운 별Estella’이라고 불렀다는 곳이다.
도시 입구에 성당건물이 서 있다. 지붕위에 풀이 수북이 자라있고, 벽은 낡아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정문 양쪽에 돌로 만든 성인의 석상이 손도 코도 입도 사라지고 흐물흐물 형태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저 위로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갔을까.
알베르게에 1시30분 도착. 샤워를 끝내고 나서 김사장 부부와 함께 도시 구경을 나갔다. 천년 전에 이렇게 멋진 도시를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건물들은 돌로 되어있고 2층, 3층으로 된 건물 사이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가 놓여있다. 거리도 돌을 박아 만들어 놓았다. 만년도 견디어 낼 수 있을 성 싶다.
역사적인 건물이 많다.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된 San Miguel 성당, 1259년 테오발도 2세가 세운 Sanro Domingo수도원, Palacio del los reyes 나바라 왕궁 등, 도시 전체가 흥미진진한 유적이다. 성당이나 수도원 곳곳에 박혀있는 조각품 하나하나에 옛 장인들의 솜씨가 남아있다. 사람은 갔지만 아름다운 작품들은 고스란히 남아 후세에 그 정신을 전해주고 있다.
길가 고서점을 지나면서 보니 오래된 성서가 진열되어있다. 1676년에 발행된 성서를 280유로에 판다고 나와 있다. 몇 백 년 세월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느낌이다.
강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다. 에가강이다. 저 강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당시 나바라 왕국의 가르시아 라미레스 왕의 딸, 레오파스가 이 지역 가스퉁 데 베아른 백작과 결혼을 했다.
1658년에 세워진 문양석이다. 1,2백년 역사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
1658년에 세워진 문양석이다. 1,2백년 역사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
돌로된 성상이 흐물흐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돌로된 성상이 흐물흐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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