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첫 부처님의 집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
2023년 11월 17일(금) 13:58 |
이영현 양달사현창사업회 사무국장 영암학회 회장 소설가 |
하지만, 오늘은 국보인 마애여래좌상보다, 마애여래좌상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용암사(龍巖寺)에 대해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참고로, 용암사라는 절의 명칭은 1970년 조사시 발견된 기와 조각의 '용암사도솔암'이라는 명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 용암사는 언제 건립되었다가 사라진 것일까.
용암사의 건립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가 설이 있으나 다음 세 가지가 흥미롭다. 첫 번째 기록은 1604년 4월 26일, 나주의 창주(滄洲) 정상(鄭祥 1533-1607)이 용암사를 다녀와서 쓴 <월출산유산록(月出山遊山錄)>이다. 용암사가 새로 크게 중창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72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가마에 의지하여 산에 오른 그는 그날 밤 용암사 주지로부터 부근의 형세가 '용이 머리로 구슬을 희롱하는 형상이어서 용암(龍巖)'이라고 하는 이름의 거창한 절이 생겼다더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스님도 당시 30여명이나 되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기록은 1653년 도선국사비 건립에 앞장섰던 도갑사 첨지승 각명(覺明)의 의뢰로 1663년에 북명자(北溟子)란 분이 쓴 <영암지도갑사사적(靈巖地道岬寺事蹟)>이다. 서역(西域)에서 온 보도존자(普徒尊者)가 구정봉 아래 깊은 연못에 10마리의 용이 있음을 보고, 주문을 외어 교룡(蛟龍)으로 만들어서 구정봉의 아홉 개 구멍에 넣었는데, 한 마리가 빠져나와 스님으로 변하더란다. 그 스님을 보호하기 위해 보도존자가 세운 절이 바로 용암사라는 것이다.
세 번째 기록은 도선국사와 관련돼 있다. 국사께서는 생전에 삼한 통일을 기원하며 호남에 '바위암(巖)' 자(字)가 들어가는 세 개의 비보 사찰을 세웠다고 하는데, 1707년 채팽윤은 <선암사중수비문>에서 순천 선암사, 광양 운암사와 더불어 낭주 용암사라고 적었다. 박전지는 <용암사중창기>에서 진주의 용암사라고 적었으나, 나는 도선국사의 출생지가 영암인 만큼 채팽윤의 글을 믿고 싶다. 그리고 이 기록이 맞다면 용암사도 운암사가 지어진 858년 전후에 건립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무튼 이후에도 용암사는 접근성이 낮음에도 마애여래좌상과 수려한 주변경관 탓인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1640년 가을에는 허목(許穆 1595-1682)이 다녀와서 <월악기(月嶽記)>를 남겼다. '용암사가 있는데 그 위에서 9층탑을 구경하였다'라고 쓰면서, 필자가 지난 번에 소개한 <도선국사답산기(道詵國師踏山記>의 원효대(元曉臺)와 감로천(甘露泉)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글들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도선국사답산기의 원효대는 마애여래좌상이고, 감로천은 용암사 터에 남아 있는 샘으로 추정된다.
1656년 유형원도 <동국여지지>에서 용암사가 '구정봉 아래 있다'고 기록하였고, 김태일(金兌一, 1637-1702) 영암군수도 1691년 7월 26일 월출산을 탐방하고 나서 <유월출산기(遊月出山記)>를 남겼는데, 용암사는 '10여 칸 규모로, 승려 10여명이 거주했다'라고 적었다. 1604년 정상이 올라갔던 때보다 용암사의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으나 여전히 용암사는 건재해 있었고, 1725년 11월 5일 진주의 정식(1683-1746)도 <월출산록(月出山錄)>에서 용암사에 머물렀던 기록과 함께, 도갑사 이전에 보도존자라는 분이 세웠다더라는 얘기를 적고 있다. 1861년경 김정호가 펴낸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용암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861년까지는 마애여래좌상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용암사가 존재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1864년 초겨울, 나주목사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방문했을 때 용암사는 사라진 후였다. 그는 <유월출산기(遊月出山記)>에서 '중이 석탑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곳은 폐사지인 용암사터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삼한 통일과 중생 복락의 염원을 간직한 용암사는 850년경에 건립되어 1천여년 후인 1860년경 사라졌다. 그리고 이것은 목포박물관의 <용암사지 지표조사 보고서, 1996>나 영암군의 <마애여래좌상 정밀실측 보고서, 2020> 등에서 보인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
하늘 아래 첫 부처라고 하는 우리 영암의 자랑스러운 국보 마애여래좌상! 그리고 사라진 용암사 터는 <영암지도갑사사적>에 의하면 호남 제일의 절경이다. 더욱이 50여 년 만에 열린 이 길은 구정봉을 거쳐 천황봉을 오르는 월출산의 최단 탐방로다. 이왕 시작한 만큼 불자며 관광객들의 탐방에 대비하여 안내판과 화장실, 쉼터 등의 준비도 서둘렀으면 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