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향한 인간의 예술혼이 어떻게 형상화 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참으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3년 12월 15일(금) 14:53
오늘 알베르게는 부엌시설이 잘 되어있다. 먹는 게 실해야 잘 걸을 수 있다. 뒤따라온 한국 젊은이들이 함께 어울려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쌀을 사다가 밥을 해먹고 된장국을 먹는 일은 원정간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렇게 외국에서 걸어보면 실감이 난다. 그래서 부엌시설이 있는지 꼭 알아본 다음 알베르게를 정한다.
식사를 끝내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마을 외곽을 흐르는 깊은 냇물을 따라 높은 성벽이 둘러있다. 이 지역이 요새였던 모양이다. 돌로 만든 성에 이끼가 끼어 고색이 창연하다. 저 성을 쌓은 지 몇 년이나 되었을까. 천년을 더 가도 끄덕 없을 성싶다.
날이 어두워졌지만 알베르게 마당 여기저기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와인을 마시고 있다. 제각기 자기 나라 말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 그런데 동양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와인 한 병을 벌써 다 비웠다. 얼큰해지면 나는 말이 많아진다. 사람이 좀 헤퍼진다. 그래서 이따끔 아내한테 핀잔도 받는다. 나도 안다. 그렇지만 비싼 돈 주고 마시는데 멀뚱멀뚱 하면 돈 아까운 거 아닌가.
김선생 부부도 덩달아 술잔을 비운다. 내가 쓴 졸시 한 편을 낭송해 주었다. '아내'라는 시다. "대숲이 / 바람에 쓸린다 // 속 빈 대나무를 저리 / 높이 키워 올린 것은 / 큰 바람에 낭창 휘어지다가 / 버팅기며 끝내 일어서는 것은 / 짱짱하게 받쳐 준 / 마디 / 때문이다"
#5월 15일 19일째 맑음
5시30분 기상. 옆자리 불란서인 부부는 아직 단잠에 들어있다. 2층 나무마루가 삐꺽거려 조심조심 배낭을 챙겨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왔다. 물을 데워 커피 한 잔 빵 한 덩이로 아침을 때웠다.
6시 15분 출발. 저녁에 비가 왔던 모양이다. 아침에도 가랑비가 내리고 있어 비옷을 챙겨 입고 출발한다. 돌로 만든 튼튼한 다리 밑으로 강물이 흐른다. 200m정도로 보이는 꽤 긴 다리인데 중세쯤에 만들어졌나 싶게 고색창연하다. 다리 저쪽에서 건장한 남자 둘이서 걸어온다. 멀리서 보니 칼 찬 기사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들이 가까이 다가와 보니 낚싯대를 들고 있다. 낚싯대를 칼로 착각했다고 얘기하니 그들이 빙긋이 웃는다. 성벽에 쌓인 마을에서 잠을 자고, 오래된 다리 밑으로 장정 둘이 어깨를 흔들며 걸어오다 보니 칼 찬 무사쯤으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사람의 무의식이란 게 이렇게 무섭고 우습다.
비가 그쳤다. 기아차 광고판이 보인다. 이 나라에서도 한국차가 꽤 팔리고 있는가 보다. 저런 광고를 보면 기분이 좋다. 어느 날, 미국 우리 동네 부근 전자제품 매장에 일본 물건을 제치고 한국 제품이 제일 비싼 값으로 좋은 자리에 떡 허니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았던 그 날. 괜히 기분이 좋아 친구를 불러내어 대포 한 잔 한 적이 있다.
마을을 두 개나 지났지만 매점이 보이지 않는다. 배가 고파 비상식량인 쵸코렛을 꺼내 먹었다. 벌판을 지나서 아르카후야(Arcahueja) 마을 입구에 이르렀다. 꽤 추운 날씨인데 길가 우물터에서 어떤 순례자가 침낭에 몸을 묻고 잠을 자고 있다. 꽤 추운 날씨인데 저러다 동사라도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옛날에는 적잖은 순례자들이 저런 모습으로 노숙을 하면서 이 길을 걸어갔을 터이다.
언덕을 넘으니 레온(Leon) 시가지가 멀리 보인다. 레온 대성당까지 가려면 여기서도 1시간3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레온시는 고대 로마군단인 제7제미나군단 주둔지에서 발전했다. 6-7세기는 고트족이 차지했고 이후 무어인들이 점령하여 850년까지 지배했다. 10세기에 아스투리아스와 레온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중세 때는 이 지역의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훗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는데 결정적인 후원을 주게 된다.
레온은 또한 중세 까미노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 그리고 가난한 이를 위한 병원이 있었다. 그래서 레온을 '모든 행복이 넘치는 곳'이라고 불렀다. 15세기 이전 유럽 Hospital은 오늘날의 병원 개념이 아닌 순례자 숙박시설을 겸한 치료시절이었다. 그래서 Hospital이란 말은 지금도 이 지역에서 알베르게를 의미하기도 한다.
고속도로를 건너갈 수 있도록 철다리가 놓여있다. 순례자를 위해 최근에 만든 모양이다. 멕도널 선전 간판이 철다리 위로 걸쳐있다. 오랜만에 반갑다. 세계 도처에 멕도널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나도 이민 초기에 멕도널 햄버거를 참 많이 먹었다. 먹거리가 주는 동질성은 대단하다.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을 쉽게 친하게 한다. 멕도널이나 코카콜라가 세계인들로 하여금 미국을 가깝게 느끼게 하는 한 방법이 되고 있을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김치가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되고 수출되는 것은 반갑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함께 음식을 먹은 것 못지 않게 잠을 같이 잔다는 것 또한 사람 사이을 가깝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 선배가 있다. 학창시절 휴학을 하고 지방에서 지낼 때, 서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선배가 사업차 내가 있던 지방에 들렀는데 호텔에서 자지 않고 비좁은 내 자취방에 머물며 밤을 새워 얘기를 나누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이렇게 한 이불 속에서 한 밤을 지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인연이냐면서 등을 토닥여 주던 그 선배의 모습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레온(Leon) 시가지를 걸어가는 도중 지은이와 나연이를 거리에서 만났다. 지연이는 발이 아파 쉬엄쉬엄 온다고 들었는데 아마 중간에 버스를 타고 온 모양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나연이는 어느 지점에서 깜깜한 밤중에 출발했는데 숲속에서 길을 잃어 크게 혼이 났다고 한다. 이 길을 마치게 되면 저들의 평생에 크게 남을 만한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시내 중심가는 아스팔트가 아닌 돌이나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았다. 건물은 대부분 3층인데 돌로 지어졌다. 바닥에 조가비가 붙어있어 순례자를 안내하고 있다.
10시경 레온(Leon) 대성당에 도착했다. 장엄하다. 성당 앞은 광장이다. 마요르 광장이라 했다. 이 고딕양식의 레온 대성당은 1199년 건립되었다. 지금부터 800년 전쯤에 세워진 건물이다. 스테인그라스가 유명하다. 1,800평방미터라고 했다. 입장료를 받고 있다. 곳곳에 걸려있는 성화며 요소요소에 놓여있는 조각들이 눈길을 끈다. 장인의 손으로 빚어낸 스테인글라스가 햇빛과 만나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조용히 빛을 내는 갖가지 문양이 황홀의 경지를 넘어 신비롭다. 신을 향한 인간의 예술혼이 어떻게 형상화 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다. 8백년 전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후대의 인간들과 소통하고 있다. 참으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광장인근 빵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이면 족하다. 의자에 앉아 웅장한 대성당을 바라본다. 8백 년 전 사람들이 저토록 거대한 건물을 지어내느라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을까. 무거운 돌을 등에 짊어지고 아슬아슬하게 꼭대기를 올라가는 노동자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다시 신발끈을 졸라맨다. 시내 곳곳에 조각품이 서 있다. 청동 조각품도 보이고 돌로 만든 조각도 보인다. 도시의 품격을 말해주고 있다.
파라도르(Parador) 국영호텔이 보인다. 산 마르코스(San Marcos) 수도원을 개조한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다. 16세기에 건립된 이 수도원은 스페인 르네상스 건축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이며, 이 건물을 짓는데 약 4백년이 걸렸다고 한다. 4백년. 우리는 국보 1호 남대문이 화제로 소실 된 다음, 재건축하는데 5년이 걸렸다. 그나마 부실공사로 말이 많았다.
파라도르 정문 앞엔 십자가 밑에서 맨발 차림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쉬고 있는 순례자 조각상이 있다. 옛날 수도원에서 순례자를 위해 빵을 나누어 주고 병을 치료해주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베르네스가(Bernesga) 강 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넌다. 다리 위에서 한 잘생긴 건장한 남자가 돈 통을 앞에 놓고 구걸을 하고 있다. 강아지까지 데리고 앉아 있다. 미국에서도 걸인들이 개를 데리고 있는 것을 보곤 하는데 혼자 몸 가누기도 힘든 사람이 왜 개까지 먹여 살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거지가 없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거지가 없었던 시대는 있었을까.
혼자 걷는 월남 여인을 만났다. 보트피플로 독일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데 오늘 이 길을 걷기 시작한다고 했다. 각자의 사정에 맞춰 걷는 다음, 몇 번에 걸쳐 이 길을 마무리 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땅굴 속 가옥이 또 나타난다. 사람 사는 집인지, 창고로 쓰는 지 궁금하다.
레온 시내를 벗어나 서쪽을 향해 걸어간다. 해가 설핏하다. 황혼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석양이 번지는 저 먼 곳. 태양은 매일 서쪽으로 움직이며 그 아름다운 땅으로 따라오라 유혹한다. 나는 지금 서쪽 산 넘어 있는 콤포스텔라를 향해 이렇게 걷고 있다.
오늘은 라 비르겐(La Virgen) 마을에서 묵기로 한다. '5스타 알베르게'라고 정문에 누군가 낙서를 해놓았다. 6유로다. 시설을 둘러보니 정말로 5스타 알베르게라는 평이 틀리지 않다.
샤워를 하고 나서 김선생네 부부와 함께 마켙을 봐 왔다.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는데 낮에 만났던 월남 여인이 보인다. 다시 만나 반갑다고 인사를 건낸다.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는 한인타운과 인접하여 월남타운이 있다. 미국에서 제일 큰 월남타운이다. 매년 구정이면 월남인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대부분이 보트피플이다. 한국군의 월남 파병과 관련하여 한국을 좋지 않게 말하는 월남인도 있긴 하지만, 망망대해에서 방황하던 보트피플을 구출해 준 전재용 선장의 이야기가 월남인 사회에 널리 알려진 다음부터는 많은 월남인이 한국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대한다. 월남은 삼국지에 나오는 맹획이 '칠종칠금(七縱七擒)'을 당했던 바로 그 지역이다. 그들의 체구는 작지만 강단지고 생활력이 강하다. 한국인은 개인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지만 월남인은 관공서에 많이 근무한다. 그래서 웬만한 관청에 월남인이 없는 곳이 없다.
마침 숟가락이 필요해 숙소에서 배낭을 뒤져 손에 들고 바삐 식당으로 가는데 독일인 왈덴마르 노인을 만났다. 아래층 침대를 찾는다면서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아래층 침대를 구하지 못하면 몇킬로를 더 걸어 다른 알베르게를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무심코 메니저에게 부탁해 보시라고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식당으로 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러면 우리가 양보할까요" 대답한다. 그러고 보니 그 노인이 독일말 밖에 할 줄 몰라 메니저에게 제대로 물어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불편해서 2층 침대를 오르내리기가 불편하다는 말인데 내 침대를 쓰시라고 할 걸 그랬다 싶어 밥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그 분에게 달려갔다. 노인을 찾아가 물었더니, 말이 통하는 독일인이 있어 양보를 받아 아래층 침대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혹시라도 그 분이 떠나버리기라고 했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 뻔 했다.
미국에 전화를 하고 싶어 엘베르게 데스크에 물어보니 동네 '사이버 카페'에 가면 싼 값에 할 수 있다며 약도를 그려준다. 찾아갔더니 자그마한 잡화상 한 구석에 공중전화 두 대가 마련되어있다. 미국의 은행에 전화를 했다. 오늘 비자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려는데 핀 넘버가 맞지 않아 못 뺐기 때문이다. 본사에 물어보니 수속이 꽤 복잡하다. 속달로 핀 넘버를 보내주겠다면서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그렇지만 매일 움직이고 있는 처지에 그럴 수는 없지 않는가. 전화로 불러주던가 아니면 이메일로 넘버를 보내달라고 했지만 보안상 그럴 수가 없단다. 그리고 해외에서 현금을 빼 쓸 계획이 있으면 미리 은행에 신고를 해 놓아야 한단다. 해외여행자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다. 비자카드만 있으면 어느 곳이든 현금인출이 가능할 거라고 믿었던 것이 잘못이다. 사정을 알게 된 김선생네가 혹 돈이 필요하면 빌려주겠다 하지만 일단 아껴 써 보기로 했다.
이 마을에 1505년 목동 알바 시문(Alvar Simon)이 성모를 만났다고 전해지는 곳에 성당이 있다고 한다. 이 성당에는 레온 지방의 수호 성모인 성모 마리아 성상이 모셔져 있는 현재의 성당은 1960년대 초반에 세워졌는데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지어져 아직까지 미학적인 논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 성모와 12사도의 조각상이 요셉 마리아 수비라츠(Josep Maria Subirachs)에 의해 동으로 제작되어 있다고 한다. 그 성당을 방문하여 조배를 드린 다음,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오늘 하루도 꽉 차게 보냈다. 숙소에 돌아오니 '가르릉 가르릉' 순례객들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가만히 침낭 속으로 들어가 편히 누웠다. 그리고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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