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달사 의병장을 역사에서 지운 자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4년 10월 31일(목) 15:13
양달사현창사업회 이영현사무국장
지난 10월 20일, 영암군에서는 양달사 의병장의 연구 사료집인 「의병장 양달사와 영암성」을 펴냈다. 지난해 번역 발간한 「양달사 장군 문헌집」이 양달사 의병장에 대한 선현들의 글 모음집이라면, 이 책은 양달사 관련 모든 사료들과 사적들을 토대로 연구한 책자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연구원으로 참여한 필자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각종 사료와 문헌들을 검토하면서, 양달사 의병장을 역사에서 지워 버린 사람이 을묘왜변의 일등 공신으로 알려진 이윤경(李潤慶)이라고 보았다. 이윤경의 호(號)를 붙여 1914년에 발간된 「숭덕재유집(崇德齋遺集」 3권을 보면 이윤경이 동생이자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순찰사 이준경에게 보낸 편지가 45통 실려 있는데, 그 중 10번째 편지에 눈에 띄는 기록이 있다. 영암성 대첩 직후 전라도관찰사 김주(金澍)는 조정에 올릴 장계(狀啓, 보고서) 초안을 미리 이윤경에게 보내주었는데, 그것을 읽자마자 그는 관찰사에게 가서 일부 내용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고, 동생 이준경에게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보고서 안에 영암에서 먼저 창의(倡義, 의병들의 전투)가 있었다는 소문인데, 심히 맞지 않은 얘기다. 어찌 이처럼 미안한 일이 있었겠는가?(且駭人聽其中爲先唱義之說尤非所當安有如此未安之事乎)

‘창의가 있었다는 소문’이 적힌 보고서에 왜 그처럼 놀란 것일까. 이유는 한 가지, 관군이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을 조정에서 알게 되면 자신은 물로 동생까지도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양달사 의병장이 상중에 출전하였다는 이유로 조용히 귀가하자, 곧바로 양달사 의병대가 선봉으로 공격한 사실을 아예 지워 버린 것이다. 이미 보고서를 올려 버려서 소용이 없게 되었다고 하였지만, 그의 얘기를 들은 순찰사 이준경은 곧바로 모종의 조치를 취했을 것이고, 덕분에 영암성 대첩은 모두 이윤경의 공적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윤경은 영암수성장(靈巖守城將)이라는 찬사 속에 가전대부 전라도관찰사로 승진하였고, 그가 재임하던 1555년 8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영암을 비롯한 모든 시군에서 양달사 의병장의 이름 석 자가 깨끗이 지워져 버린 것이었다. 더욱이 이준경이 승승장구하여 영의정이 되고, 진도에 귀양을 와 있던 사촌조카 사위 노수신마저 영의정에 오르다 보니 조정 안에서도 감히 이윤경의 공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할 수가 없었다. 「명종실록」 1555년 12월 2일 기록에 장흥부 벽사역에 붙어 있었다는 ‘有功達泗歸何處(공적이 있는 양달사는 어디에 두었느냐?)’라는 시구가 담긴 민중시가 남게 된 것만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윤경은 본래 성품이 온화하고 성리학을 공부한 도학자로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어려서 동생과 함께 귀양을 간 갑자사화(甲子士禍)의 비극을 잊지 않고 기민하게 조치하여 양달사의 이름을 완전히 지웠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다가 같은 책 11번째 편지에서 동생에게 이렇게 괴로움을 실토한다.

나의 잘못된 조치는 단연코 계획된 게 아니었다. 참으로 우습다. 감사(監司)가 바뀐 것도 뜻밖이다.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으나 더욱 미안할 따름이다. 그저 거리낌 없이 가슴 속을 탁 털어놓고 싶을 뿐이다(我之失措斷不計之可笑可笑監司之遞出於不意我太厚還亦未安爾但其開懷甚豁以是爲無疑耳).

미안하다고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지만, 하지만 그는 잘못된 조치를 끝내 시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조선왕조실록」에서 영암성 대첩 관련 기록은 수없이 왜곡되거나 삭제될 수밖에 없었다. 1555년 5월 11일부터 24일까지 무려 10여 개 성을 함락한 6천여 왜구를 영암성 대첩에서 물리친 변변한 장수 하나 기록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창우대가 동문 밖에서 왜 굿판을 벌였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럼에도 율곡 이이나 다산 정약용 등 대학자들은 물론 오늘날 대부분의 사학자까지 「조선왕조실록」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 「여지도서」나 「호남절의록」 등에 적힌 양달사 의병장의 기록에는 거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최근 일부 영암군민들까지 여기에 동조하여 이윤경 영웅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며칠 전 한 단체장은 이윤경 공적비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반문하기조차 했다.
지난 500여 년 동안 양달사 의병장의 공적을 인정해 달라고 호소한 수많은 선조들의 기록이 「양달사 장군 문헌집」에 담겨 있고, 후손들에게 영원히 잊지 말라는 군수들의 당부가 공적비와 순국비에 아로새겨져 있다.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은 우리들의 책무이자 사명이다. 이제라도 하나된 군민 의식과 올바른 역사관으로 양달사 선양사업에 동참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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