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암마을 출신 ‘반암’<문찬규 선생을 만나다> 발간

장암리 유일 대과 급제 인물
<반암선생문집> 한글 번역판

이승범 기자 yanews@hanmail.net
2025년 03월 14일(금) 09:42
장암마을에서 유일하게 대과에 급제한 인물로 알려진 반암(泮菴) 문찬규(文粲奎, 1737~1822) 선생의 『반암선생문집(泮菴先生文集)』이 한글로 번역되어 나왔다.

남평문씨 순평부원군파 반암공종중 문희봉 회장에 따르면, 문찬규 선생은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직부전시(대과 최종 시험)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서도 연장자에게 기회를 양보하여 영조(英祖)에게 칭찬을 받았고, 1777년 대과 급제 후에는 자신의 분수를 깨닫고 평생 경양도찰방, 오수도찰방, 첨암도찰방 등 외직을 전전한 인물이다.

영의정을 역임한 서용보의 스승으로서 당시 김종수, 김조순, 홍봉한 등 쟁쟁한 인사들과 친밀한 사이였음에도 아첨하거나 아부하지 않은 청빈한 관리로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을 때는 생활이 곤궁함을 알고 영암군수가 보내준 쌀 3섬을 그냥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번에 번역과 편집을 맡은 영암학회 이영현 회장은 “이번 작업을 통해 장암 구암사(龜巖祠)의 건립 연대가 『디지털영암문화대전』 등에 기재된 1668년이 아니라 1620년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문익주와 이후백 두 선생을 배향하던 구암사에 1822년 서명백 선생을 배향하게 된 경위는 물론 남평문씨들의 사적지인 남평의 문암(文巖) 비각을 문찬규 선생의 주도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18세기 전후 영암을 중앙에 알리는 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 문찬규 선생임에도, 영암은 물론 장암마을에서조차 잊혀진 존재가 되어 안타깝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문찬규 선생의 9대 종손으로서, 일생 동안 반암 선생의 교지 등 각종 자료를 소중힌 간직해 온 문대중(대규) 씨는, “이제야 후손의 도리를 어느 정도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승범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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