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고 통합, 지역 명문고의 맥을 이어야 한다. - ‘공공형 모델 재도입’보다 ‘검증된 체제의 안정적 계승’이 우선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
2025년 07월 17일(목) 1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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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 직후 언론을 통해 보도된 영암군의 계획은, 본교와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된 것이라는 점에서 유감이다. 특히, 학교 부지 맞교환 추진, 공공형 사립고 모델 도입 등은 교육 현장과 학교 구성원 간 충분한 공감대 없이 제시된 내용으로, 오히려 지역사회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영암여자중·고등학교는 지난 반세기 동안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지역 명문사학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해 왔다. 1954년 故 김석문 선생이 일일이 손으로 쌓아 올린 흙벽돌 교실에서 시작된 고등공민학교를 기반으로, 1971년 영암여중, 1975년 영암여고가 차례로 개교하였다. 지금의 부지는 단지 공간이나 시설이 아닌, 학교의 설립 정신과 교육 철학, 그리고 지역민의 자부심이 응축된 장소이다. 이러한 상징성과 역사성을 무시한 채 부지를 이전하거나 맞교환하겠다는 발상은, 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과 지속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또한, 영암군이 제시한 ‘공공형 사립고’ 모델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영암여고는 2019년부터 4년간 전라남도교육청의 시범사업으로 전국 최초의 공영형 사립고로 운영되었으나, 행정적 이중구조, 운영 권한의 불분명함, 예산지원 이행 문제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제도는 결국 종료되었다. 현재 전라남도 내에는 공영형 사립고가 단 한 곳도 남아 있지 않으며, 전국적으로도 안정적으로 안착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사실은 단순히 정책적 실패로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일시적인 행정 실험의 대상이 아니며, 제도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의 철학과 지속 가능성이다. 단기적 구조 개편보다는, 이미 수십 년간 검증된 학교 운영 체계를 바탕으로 신뢰와 연속성을 이어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해법이다.
교육의 지속성은 단지 예산이나 제도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설립자의 건학이념, 학교 재단의 책임 있는 운영, 교직원의 헌신적 노력, 지역사회의 신뢰와 지지가 어우러질 때에야 비로소 실현된다. 영암여중·고가 지금의 성과를 이루기까지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기반들이 끊임없이 작동해 왔으며, 이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교육 자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립고등학교 체제를 유지한 통합’이라는 방향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이미 그 교육적 철학과 운영 체계가 검증된 사립고등학교를 기반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지역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교육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또한, 군이 제시한 통합 모델에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하나의 교육특구로 구성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현행 교육행정 체계상 초·중학교는 교육지원청이, 고등학교는 도교육청이 직접 관할하고 있어, 이 같은 계획은 교육행정 체계와 맞지 않으며 운영상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 더구나 통합 중학교를 현재의 영암여중·고 부지로 옮기겠다는 방안은, 해당 부지의 물리적 여건과 교육적 상징성을 감안할 때 교육환경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교육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시설이 아니라, 학교의 정체성과 역사, 교육 철학이 집약된 장소라는 점에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영암여중은 이미 교육부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대상학교로 선정되어 2026년 사업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는 단지 정부의 재정 지원만으로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다. 학교 재단의 기부, 교사들의 헌신, 지역사회의 기대와 협력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처럼 학교 구성원들이 수년간 준비해 온 계획이 일방적 통합 추진으로 인해 지연되거나 취소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더욱 우려되는 점은 영암군이 ‘통합 무산 시 영암고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언론에 공개한 점이다. 이미 영암고와 영암여고는 각각 전라남도교육청에 ‘남녀공학 2028년 전환 신청 의향서’를 제출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학교만을 대상으로 한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지역사회 내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할 수 있으며, 교육정책의 일관성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다. 단기간의 행정적 목표를 위해 그간 쌓아온 교육의 연속성과 철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며, 절차보다 공감이다. 사립고 체제의 장점을 유지하며, 지역의 교육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통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지역사회를 위한 진정한 해답이 될 것이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