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뇌물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5년 07월 17일(목) 16:15
전 완도군 부군수 이진
추석, 설 명절에 이웃 간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아름다운 우리나라 풍습 중 하나이고 명절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도움을 받은 지인들에게 선물을 보내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서로간의 정을 나누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물(膳物)의 한자 말을 살펴보면 선(膳)은 “반찬, 고기, 음식, 먹다, 요리하다”의 뜻을 갖고 있어서 오래전부터 선물은 주로 음식을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고받는 선물의 품목도 변화해 왔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에는 물자가 귀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쌀, 밀가루, 고기 등 서로에게 식량이 될 수 있는 농수산물을 주로 주고받았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경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설탕, 통조림, 조미료 등 생필품과 가공식품이 선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설탕은 물자가 부족했던 이 시기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경제가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했던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선물의 주요품목이 식료품에서 와이셔츠, 내의, 화장품, 술 등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대 경제가 대중 소비 사회로 접어들면서 선물은 더 다양하고 고급스러워져 넥타이, 지갑, 벨트 등 잡화용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1990년, 2000년대 들어서는 홍삼, 수삼, 등 건강식품의 인기가 높아져 “허기”를 채우는 선물이 아닌 생활에 “여유”를 더하는 선물들을 주고받게 되었다. 필자가 영암군청에 재직하던 당시만 해도 나라의 경제 사정도 어려웠고 급여도 매우 낮아 월급으로 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명절 때가 되면 직원 상호 간에 설탕 한 봉지, 밀가루 한 포대라도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었다. 요즘은 택배가 있어서 주문만 하면 전국 어디에서나 신속하게 배달이 되지만 당시에는 택배가 없어서 선물전달이 어려웠는데 군청에 근무하는 선배님이 운영하는 군청 앞 “대화상회”에서 직원들의 거주지 데이터(?)를 갖고 있어 주문을 받아 집에까지 전달하는 선물 물류기지 역할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직원들과 선물을 주고받으며 나누었던 훈훈한 정은 지금까지 이어져 퇴직 이후에도 자주 만나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이처럼 선물은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전달하는 작은 정성이었다. 그래서 선물을 아주 작은 뜻이란 의미로 “촌지(寸志)”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고 주는 사람의 마음을 담았다고 해서 “인정(人情)을 베푼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촌지”라는 표현이 대가를 바라고 다른 사람에게 금품을 전하는 뇌물과 동의어가 되어 버렸고 이러한 행태가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되자 2016년에는 일명 김영란법이라 일컫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 공적 업무 종사자들이 부정청탁이나 금품을 수수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선물이나 접대, 부조금의 액수까지 제한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부정청탁과 금품수수가 감소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작용도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접대비 제한기준에 맞추기 위해 카드를 분할 결재하는 등 편법으로 법망을 피해가기도 하고 기업이나 기관, 단체에서 명절이면 농수산물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농수산물 소비를 촉진했었는데 선물 가액을 일정 금액으로 제한하다 보니 농수산물 선물 구매 수요가 대폭 줄어들어 농어민들이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부작용이 나타나 농수산물에 대한 선물 액수 제한기준을 상향하는 조처를 하기도 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말이 있는데 부정부패는 당연히 척결해야겠지만 편법을 동원하고 농수산물 구매수요를 위축시킬 정도로 지나치게 제한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좀 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선물은 마음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인데 최근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는 통일운동을 해 온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로부터 300만 원 상당의 고가 프랑스 명품 브랜드 가방을 선물로 받은 것이 언론에 폭로되어 온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나라의 대통령 부인이 사적으로 부당한 선물을 받은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받은 선물에 돈을 더 보태어 다른 물건으로 바꾸었다는 기사를 보고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도덕성은 말할 것 없고 추잡한 물욕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김건희 비리를 수사하는 특검에서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를 조사한다고 하니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지만 김영란 청탁금지법은 이러한 경우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 생각하면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엄한 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검찰은 유튜브 방송인 “서울의 소리”에서 명품 가방을 전달하는 영상까지 공개하면서 사건을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수사를 거쳐 무혐의 처분했다. 법불아귀(法不阿貴 )라고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검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해서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고 누구라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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