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꽃의 진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
2025년 10월 02일(목) 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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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화과는 꽃을 숨긴 채 열매로 피어난다. 겉으로는 소박하고, 조금은 투박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눈부신 빛이 감춰져 있다. 무화과를 손에 쥘 때마다 나는 묘한 설레임을 느낀다. 손바닥 위에 놓인 작은 세계, 조용한 고백을 기다리는 하나의 마음 같다.
무화과의 가장 큰 비밀은 바로 꽃이다. 세상 앞에서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는 꽃, 어쩌면 스스로조차 잊은 듯 숨어 버린 꽃.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꽃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 깊은 속에서 은밀히 피어나고, 그 시간이 쌓여 열매가 된다. 마치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은 상처와 눈물이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삶의 향기로 남는 것처럼. 나는 그 사실 앞에서 늘 숙연해진다.
무화과를 반으로 가르면 붉은 심장이 드러난다. 그 안에는 무수한 씨앗이 촘촘히 박혀 있는데, 그것은 별들이 박힌 밤하늘 같기도 하고, 오래된 기억 속 작은 목소리들 같기도 하다. 무화과는 작은 과일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우주가 숨어 있다. 우리는 종종 삶을 단순히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만, 무화과는 속을 열어야만 진실을 보여준다.
나는 무화과를 먹을 때마다 인생의 아이러니를 떠올린다. 드러나지 않는 순간들이 쌓여 결국은 가장 달콤한 열매를 만들어 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독, 조용히 감내한 기다림, 차마 드러내지 못한 눈물이 모두 무화과처럼 열매로 맺히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인생의 가장 은밀한 기적이다.
무화과의 즙은 목을 타고 흐르며 오래된 여름의 기억을 불러온다. 햇빛이 가득한 마당, 그늘에 앉아 있던 어린 시절의 나, 손에 쥔 작은 과자를 몰래 맛보던 순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혼자 누리던 비밀스러운 기쁨, 그것이 바로 무화과 한 입 속에 담겨 있다.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도 충분히 존재하는 행복, 그 은밀한 달콤함이 마음을 적신다.
무화과는 나직하게 속삭인다. 화려하게 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진실한 것들은 대개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고. 나는 그 목소리에 오래 귀 기울인다. 무화과의 침묵 속에는 삶의 깊이가 배어 있고, 그 깊이는 언젠가 누군가의 입술 위에서 달콤한 열매로 증명된다.
그래서 나는 무화과를 인생의 은유라 부른다. 보이지 않는 꽃이 결국 열매로 남듯, 우리의 삶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이 모여 하나의 진실로 완성된다.
무화과 한 알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의 하루가 보잘것없어 보여도, 언젠가 그 속에서 진솔한 열매가 익어갈 것이다.”
나는 오늘도 무화과를 손에 쥔다. 그리고 다짐한다. 내 안에도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을 기다려 본다. 그 꽃이 언젠가는 열매가 되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달콤한 맛으로 남으리라는 것을. 무화과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그 진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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