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작가 "객주 문학관"을 다녀오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5년 11월 14일(금) 09:54
이진 전완도부군수
평소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독서 모임을 만들어 책을 읽고 막걸리 한잔을 나누면서 각자 작품에 대한 소감을 발표하고 토론을 벌여왔는데 이번에는 김주영 작가 대하소설 "객주"를 읽고 작가의 고향인 경상북도 청송군에 세워진 "객주 문학관을" 탐방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친구 孤巖(황태하), 海園(박성기)와 함께 청송으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청송군은 경상북도 내륙에 자리 잡은 울창한 산림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고장으로 주왕산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주왕산 국립공원보다는 청송교도소가 더 익숙하게 알려진 고장이다. 청송에 처음 교도소가 들어설 당시에는 많은 주민들이 지역 이미지 실추를 우려하여 교도소 유치에 반대하였지만, 지금은 교정직 공무원들이 다수 거주하여 상주인구가 크게 늘었고 많은 면회객들이 방문하게 되어 지역경제 효자 노릇을 하게 되자 교도소를 추가로 유치하겠다고 나설 정도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송군 어디에도 교도소 안내 표지판은 찾아볼 수 없었고 교도소 명칭도 청송교도소에서 경북 북부교도소로 바꾸었다는 말을 듣고 혐오 시설을 유치해서라도 지역경제를 살려야 하는 인구소멸지역 자치단체의 절박한 현실과 혐오 시설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의 양면성을 생각해 보았다.

소설 "객주"는 조선 후기 봇짐과 등짐을 지고 전국을 떠돌며 물물교환과 유통을 담당했던 보부상들의 고단한 행로와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애환을 그린 서민들의 역사소설이다. 우리나라 역사소설은 대부분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왕위 계승, 그에 따른 궁중 비화나 권문세가들의 권력다툼을 소재로 하였기 때문에 영웅적인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소설 객주는 역사의 전면에 얼굴도 내밀지 못한 장돌뱅이 천민들의 고단한 삶을 있는 그대로 그린 이야기로 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에서 바라본 역사 이야기라서 영웅적인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보부상들은 대부분 처자식도 두지 않고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면서 보부상단을 조직하여 거친 눈보라와 비바람을 헤치고 무거운 등짐을 짊어진 채 험준한 고갯길을 넘고 강을 건너 퀴퀴한 봉놋방에서 새우잠으로 밤을 새우는 고단한 삶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이들은 힘들고 거친 삶을 살면서도 남다른 의리와 엄격한 규율로 공동체의 질서를 지켜 보부상단의 소속이 다르더라도 병에 걸린 사람을 만나면 일면식이 없더라도 병구완을 했을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상을 당한 동료 보부상의 장례까지 치러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의와 상도의를 중시하여 상거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상단의 기강을 무너트리는 자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엄하게 징치하여 비록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그 삶에도 선함과 악함이 있었고 받아들임과 내침의 법도를 분명히 했다. 뿐만 아니라 소설 객주는 보부상들의 이야기와 함께 조선 후기 관료사회의 부패와 고을 수령, 아전들의 가혹한 수탈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이들에게 저항하는 보부상들의 처절한 이야기를 절절하게 그려내 독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소설 첫 장부터 시작되는 작가의 걸쭉한 재담은 자신도 모르게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현대어로 번역하지 않은 원문의 토속어와 방언, 한자어 등은 국어사전을 펼쳐야 이해할 수 있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수고로움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진정성을 한층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작가는 1974년 객주를 쓰기 위해 한 달에 열흘 이상 집에 머물러 보지 못하고 카메라와 망원경 취재 노트를 들고 5년여 동안 전국 200여 개의 시골 장터를 누비며 작품 소재를 모았고 1979년 6월 서울신문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1984년 2월까지 4년 9개월 동안 1,465회의 연재를 통해 1∼9권을 써 내려갔고 2013년 마지막 10권을 마무리함으로써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

청송군에서는 김주영 작가의 위대한 작품세계를 기리고 그가 태어난 청송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작가가 태어난 청송군 진보면에 소재한 옛 진보고등학교 넓은 부지에 3층 학교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객주 문학관"을 만들었다. 문학관 내에는 작가의 생애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고 작가가 사용했던 필기구와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된 취재 노트, 그가 사용한 때 묻은 손가방, 카메라와 망원경에서는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관에는 당시 보부상들의 복장과 지게, 봇짐, 주막거리 등을 미니어처로 재현하여 작품 속의 보부상 생활상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문학관 관계자분께 우리 일행이 멀리 전남에서 일부러 김주영 작가를 찾아 왔다고 하자 고마움을 표하면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시고 기념품과 김주영 작가의 저서 "오래된 단지"를 선물로 주셨는데 집에 와서 읽어 보니 청송군에 전해 내려온 구전 설화에 증언과 기록을 더 해 사실성을 부여하여 재탄생시킨 청송고을 이야기였다. 청송이 배출한 걸출한 작가의 문학관을 세우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자기 고장 출신 작가로 하여금 청송을 알리는 글을 쓰도록 하여 홍보에 활용하는 청송군의 신선한 아이디어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역사 기록은 기득권 중심으로 기술되어 서민들은 역사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는데 가려진 서민들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 인간의 보편성과 존엄성을 일깨워준 서민들의 역사소설 "객주"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많은 분들에게 소설 "객주" 일독을 권하고 싶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이 기사는 영암군민신문 홈페이지(yanews.net)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yanews.net/article.php?aid=4466932351
프린트 시간 : 2025년 11월 14일 16:1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