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읽읍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6년 01월 02일(금) 10:37
김기중 영암향교 장의
작년 12월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백대현) 심리로 열린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사건 결심 공판에서의 윤 전 대통령의 최후진술을 들여다보자면 그가 헌법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절감하게 한다. 그는 “반헌법적인 국회의 독재로 인해 국정이 마비되고 우리 헌법에 규정된 권력분립이나 의회민주주의, 헌정질서가 붕괴된 상황”이라며, “계엄에는 전시계엄이 있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비전시계엄을 상당히 많이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가 비상사태를 발생시킨 원인이 국회이기 때문에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을 깨우고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와 국정에 무관심하지 말고 제발 일어나 관심을 가지고 비판도 좀 하고 이렇게 해달라는 그런 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헌법 제69조에 따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겠다”고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까지 한 대통령이 과연 헌법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는지 의심할 정도이다.

헌법 제76조와 77조의 대통령의 긴급명령권과 계엄선포권은 내우, 외환, 천재지변 상태이거나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정도로 전시, 사변 등의 긴박한 상황에서 국가 보위를 위해 불가피하게 발동해야 하는 것이며, 이 경우 모두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 또는 통보하여 승인을 얻거나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바로 이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통령에게 이러한 권한을 부여한 헌법 정신은 전시 등 국회의 소집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불가피하게 행해야 하는 책무임을 오히려 강조한 것이지, 비상대권이라고 해서, 자신들의 권력 사유화를 위해서라면 반헌법적이고 견강부회격인 명분만을 강요하며 ‘전가의 보도’처럼 경찰과 군대를 마음대로 동원해도 된다는 취지가 전혀 아닌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와 탄핵, 내란 재판이 어느덧 해가 바뀌어 3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윤석열과 그 ‘어게인’ 세력들은 국민 앞에 반성하고 사죄하기는 커녕 여전히 계엄령이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 행사라는 궤변을 고집하고 있다. 그들의 그릇된 인식과 신념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복합적인 원인들이 있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 그들의 그릇된 인식이 잉태되어 화석처럼 굳어지도록 만들어온 토양,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수많았던 불법적인 계엄령을 한 번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잘못된 학습효과와 이에 대한 근본 처방인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 헌법 읽기를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1987년 10월 29일 제10호로 개정 공포된 현행 헌법은 전문과 본문 10개 장, 130개 조, 부칙 6개 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이를 질문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백 명 중 한 명이라도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골똘히 생각이라도 할까? 오히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짜증 섞인 표정을 짓지는 않을까? 그러니 뚱딴지같은 사람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가족이나 주변 친한 지인들끼리라도 함께 헌법 읽기를 시도해 보면 좋겠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겨우내, 6학년 형과 한방을 썼던 나는 문풍지 바람 흔들리는 촛불 아래 앉은뱅이책상을 마주한 채 형이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외다 막히면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쉼 없이 반복하곤 했던 형, 그에게 그만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아직도 멀었단다. 내일 학교 가서 글자 하나라도 틀리면 선생님께 맞는다며 나의 제안을 단호히 물리쳤다. 선생님께 맞는다는 말이 무서워 나도 어깨 너머로 따라 하다 줄줄 외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 당시 노래로까지 만들어져 전국의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를 지배해 온 국민교육헌장 열풍은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등을 거치며 90년대 들어 점차 사그라들다가 2000년대 초반에 제정 기념일도 폐지되었지만 그 한 자 한 자는 아직도 우리 뇌리에 어렴풋이 각인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개인의 자유와 민주의식의 함양보다는 낡은 국가관과 전체주의를 잉태시켰다는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웅장한 합창곡처럼 모두가 함께 했던 암송 효과는 국민에너지로 승화되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제 그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게 하는 K-민주주의의 실현을 헌법 읽기에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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