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유친(父子有親)
김성대 www.yanews.net
2011년 02월 25일(금) 11:15
김성대
광주·전남 재향군인회 31-33대 회장
광주시민사회단체총연합 창립 상임공동대표
영암군새마을지회장(94~95)
현)양만수산업협동조합장
얼마 전 영암군민신문으로 부터 고정칼럼인 ‘낭산로에서’ 필진으로 참여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필자로서는 한동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암사람으로서 영암에 살면서 겪은 얘기, 영암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뿌리치긴 어려웠다.
더구나 영암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학창시절과 군복무시절을 제외하곤 줄곧 영암에서 농업분야에 종사해 왔다. 영암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살아왔다. 필진으로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영암군민들과 대화와 소통의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쾌히 승낙했다.
어머님을 보내는 마음
첫 칼럼의 내용으로 생각한 것은 ‘영암에 삶의 터전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소망’이었다. 영암이 고향이거나 영암이 직장이거나 자랑스런 내 고향 영암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러던 참에 내 어머님께서 8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으로부터 꼭 6년 전 86세를 일기로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나는 60이 다 된 늦은 나이에 ‘고아’가 된 셈이다. 그만큼 마음 허전하고 슬픔을 가눌 길 없다.
어머님을 떠나보내며 새삼 생각해본다. 부자유친(父子有親), 그것이 갖는 오늘날의 의미는 무엇이며 나에게는 또 어떤 의미였는가?
부자유친이란 삼강오륜(三綱五倫) 중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도리에 있어서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자애로움으로 대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는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도리(道理)라는 덕목(德目)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날로 산업화 되어가고, 세계화 되어가는 세태라고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더욱 더 절실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더구나 부자유친이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조상과 후손과의 관계도 의미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내 고향 영암에 삶의 터전을 가지고 살아온 탓에 차남임에도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을 모시면서 살아온 사실에 대해 필자는 항상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자식은 부모가 행하는 대로 보고 배운다’ 했다. 필자는 아버님과 어머님을 모시고 산 덕분에 그들로부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뿐 아니라 조상님과 후손과의 관계까지도 보고 배우며 살아왔다.
아버님이신 덕암(德岩) 김종수(金鍾洙)님께서도 그러셨다. 차남이시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사를 지내시며 조상을 모시는 일에 앞장서셨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아버님이 하시는 대로 보고 배우고 그대로 행한 셈이니 부자유친의 도리가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지 새삼 느껴진다.
이왕 개인사 얘기를 시작한 터이니 애독자 제현의 용서를 구한다. 부모님께서 생활이 어려울 때 필자는 자청해서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두 번이나 휴학하며 가사를 돌보았다. 대학시절인 1973년쯤인가, 휴학을 하고 실뱀장어를 일본에 수출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은 필자의 평생 직업이 되었다.
차남이면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기본이었고, 11대조 할아버지부터 모시는 시제도 주관하고 있는 가락김씨 삼현파 500여세대의 종회장을 현재까지 13년째 맡고 있다. 가락종친회의 군종회장과 도종친회 임원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선조를 모시는 일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필자의 자식에게도 그대로 보고 배우고 행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의례에 반드시 참여시키고 있다. 아버님께서 필자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부자유친했던 아버님
이제는 고인이 되신 김광진 군수께서는 1990년 당시 군 노인회장이셨던 아버님과 당시 청년회의소(JC) 회장이었던 필자의 관계를 유심히 지켜보시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부자유친이란 말이 있는데 회장님(아버님)과 김 회장과의 관계가 참으로 보기 좋고 부럽기까지 하다.”
부친께서는 군 노인회 행사를 10년 동안 주관하셨는데 당시 청년회의소 회원들과 재향군인회의 젊은이들이 노인회 행사장을 준비하고 뒷바라지 하면서 자리를 지켰고, 필자가 행사를 할 때면 품앗이라도 하듯 부친께서 노인회 어르신 100여명 이상이 항상 행사장을 지키면서 함께 하시던 그 모습이 김 군수님 보시기에 매우 좋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젠 항상 함께였던 아버님은 물론 언제나 다정다감했던 어머님마저 이 세상 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지도 않을 뿐더러 그저 허전하고 슬프다.
필자의 부모님 산소는 덕진면 금강리의 ‘꿀산’ 도로가에 있다. 광주를 오가며 한눈에 바로 바라볼 수 있어 좋다. 필자는 광주를 오가는 길에 부모님 산소를 바라보며 거의 매일 대화를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나에게 무엇을 바라실까? 오늘 내가 하게 될 말과 행동이 부모님께 누가 되지는 않을까?” 등등. 그러면 부모님은 매일 필자에게 “형제간에 오순도순 살아가면서 지역사회와 국가를 사랑하고 봉사하면서 살아가라”고 하시는 듯하다. 그것도 항상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래서 더욱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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