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鳩林), 비둘기 숲에서 도선을 만나다

문화관광해설사에게 듣는 내고향 문화유산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1년 08월 12일(금) 09:35
구림(鳩林)하면 포근하고 따스한 외갓집 생각이 난다. 어린시절 외갓집 삼촌댁이 장흥 부산면 내동리였다. 그곳을 가려면 넓은 개울을 지나야 했는데 그 때 외삼촌이 나를 업고 건너간 기억이 난다. 약간 쌀쌀한 늦가을이었다. 내 가슴팍이 맞 닿았던 삼촌의 등허리가 따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하다. 구림은 마치 삼촌들과 이모들이 살고있는 살가운 외갓집에 온듯, 편안하고 소나무로 둘러싸인 마을은 안온하다. 회사정에서 바라본 월출산의 우뚝우뚝한 모습이 마치 남성의 근육질처럼 탄탄하다. 그래서 조선시대 정약용 선생께서 강진으로 유배를 올때 월출산을 지나면서 이런 시를 남겼을까.
‘누리령 산봉오리 바위가 우뚝 우뚝,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있네, 월남사로 고개돌려 월출산을 보지말게, 봉우리 봉우리마다 어쩌면 그리도 도봉산 같애’ 라고 읊으면서 서러운 유배길을 터벅터벅 걸어갔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산은 그 산이다. 다만 우리들 마음이 강팍해지고 남보다 더 잘먹고 잘살려는 욕심이 앞서다보니 아름다운 강산을 보아도 감동이 없다. 누군가 멋진 이야기를 했다 월출산 천황봉에서 꽃씨 하나 날라와 영암의 서쪽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더니 구림이란 꽃봉우리를 피워냈다고 노래했다. 구림이 한송이 꽃인셈이다. 지금부터 우리를 위해 준비 해 놓은 진귀한 도선국사(827-898)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구림(鳩林)이란 마을 이름은 도선국사에서 비롯되었다. 도선의 어머니 최씨가 성기동 천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오이 하나가 물에 떠내려왔다. 아랫물로 내려가라고 방망이로 저었지만 그 오이는 내려가다 말고 다시 역류하여 올라왔다. 최씨가 “이 오이는 나더러 먹으라는 신비한 오이임에 틀림없다” 생각하고 빨래를 하고나서 집으로 와 그 오이를 먹었다고한다. 그리고 나서 임신이 되었는데 처녀의 몸으로 자식을 갖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터라 친정 어머님에게 알리고 친척이나 이웃에겐 일체의 비밀로 하였다.
10달이 되어 해산은 하였지만 아이를 키울수없는 처지라서 일찍이 편안한 세상으로 보내려고 포대기에 쌓아서 성기동 바위틈새에 버렸다. 그리고 나서 20여일후에 친정어머님과 함께 그곳에 가서 보았더니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알고보니 그 동네숲에서 사는 비둘기들이 밥이나 열매를 물어다가 먹여서 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가 키웠는데 그 아이가 장차 고려시대 최고의 승려인 ‘국사 도선’이 되고 아이를 버렸던 바위가 국사암이 되었다. 그리고 마을은 비둘기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 해서 ‘鳩林’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 후 대여섯살 먹은 도선을 영암의 월암사로 보내어 중이 되게 하였는데 월암사는 월암마을 뒤에 있는 초수동이라는 곳에 있었다. 도선국사가 처음 출가하여 머리를 깎은 곳이라 하여 월암사터를 도선의 ‘낙발지지(落髮之地)’라 한다. 현재 백암마을 앞에 하얀 석영질의 큰 바위가 있다. 도선국사가 중국으로 들어가면서 이 바위 위에 자기의 적삼을 벗어 던지면서 “이 바위가 희면 내가 산 줄 알고 검어지면 내가 죽은 줄 알아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중국에 다녀왔는지 하는 것은 전설로만 남아있는 형편이다. 도갑사는 헌강왕 6년 880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도선은 15세에 지리산 서봉인 월류봉 화엄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불경을 공부하고, 4년 만에 대의를 통달, 신승으로 추앙받았다. 이때부터 수도행각에 나서 동리산의 혜철을 찾아가 무설설무법법(無說說無法法)을 배웠다. 23세에 천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후 태백산 움막에서 고행하였으며, 광양 백계산 옥룡사(玉龍寺)에 머물다가 돌아가셨다. 통일신라 헌강왕의 초빙으로 궁중에 들어가 왕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음양지리설과 풍수지리설은 고려·조선 시대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땅에대한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죽은 후 효공왕이 요공국사라는 시호를, 고려 현종은 대선사, 숙종은 왕사를 추증했고, 인종은 선각국사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의종은 비를 세웠다. 도선에 관한 설화가 옥룡사 비문 등에 실려 있다.
김이호/ 영암문화관광해설가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이 기사는 영암군민신문 홈페이지(yanews.net)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yanews.net/article.php?aid=790787918
프린트 시간 : 2024년 10월 18일 18: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