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주소사업 전국 동시 고시 그 後

마을이름 대부분 사라져 전통·역사성 함께 사장 우려

편집국장 기자 yanews@hanmail.net
2011년 08월 19일(금) 08:42
농촌 마을 인구 노령화 가속 새 주소인식 오히려 불편
향우들, “고향에 대한 추억 사라지는 것 아니냐” 걱정
영암군은 지난 7월29일 군 공보와 게시판 및 홈페이지 등에 새 주소인 도로명 주소를 고시했다. 종전 주소와 도로명 주소, 도로명 주소의 고시일과 부여사유, 각종 공부상의 주소전환계획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새 주소사업과 관련해 전국적으로 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심지어는 민족전통의 지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지명을 원상 복구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주로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영암지역 농촌마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 주소사업의 전국 동시 고시에 따른 반응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註>
한대리→각동길, 역리→갈무정길, 회문리→교동로, 동무리→군청로…
■ 주소 어떻게 바뀌나?
새 주소사업이 ‘도로명 주소사업’인데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지명이 모두 도로이름으로 대체된다고 이해하면 쉽다.
실례로 영암읍 한대리는 ‘각동길’로, 역리는 ‘갈무정길’로 바뀐다. 여기서 각동길로 명명한 것은 중앙마을 평촌의 서북쪽 활성산 아랫마을 산 모양이 소뿔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것이 군의 설명이다.
또 영암읍 개신리와 장암리, 농덕리 등은 ‘개신율산길’로 바뀌고, 회문리는 ‘교동로’(옛 영암읍성 서문 밖에 위치했다는 교동이라는 명칭을 반영했다고 함) 또는 ‘구룡동길’로 바뀐다.
군청 인근의 역리와 동무리는 ‘군청로’로 바뀌고, 서남리는 ‘남문로’(옛 영암읍성의 남문이 있었다고 해서 반영함)로, 망호리는 ‘망호정길’, 학송리는 ‘반송정길’로 바뀐다. 신북면의 행정리는 ‘마한문화로’로 바뀐다.
■ 마을이름 대부분 사라져
이처럼 새 주소사업의 시행으로 영암지역 읍면의 마을이름은 대부분 사라진다. 전국적으로 모두 4만 여개의 동과 리가 삭제된다고 한다. 새 주소사업 시행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민족전통의 지명을 원상복구 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옛 지명이 한꺼번에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군민 A씨(61·영암읍 거주)는 “군이 도로명주소를 고시한 것을 보았는데 그 사유로 들고 있는 내용이 아주 옛날에 불렀던 명칭이어서 나도 알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명칭인 경우도 많았다. 군이 어떻게 연구하고 발췌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면서 “새 주소사업은 점점 더 노인들만 남게 된 농촌현실로 미뤄볼 때 오히려 주민들의 불편만 가중시킬 뿐 아니라 혼란을 주게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 농촌실정에는 더 안 맞아
새 주소사업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도시에 적합할지 몰라도 고유의 마을이름을 토대로 전통을 계승하며 옹기종기 살아온 농어촌공동체에는 더욱 맞지 않는 제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전통지명이 사라지게 되면서 농어촌마을이 간직해온 고유의 풍습이나 문화까지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지난 7월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새 도로명주소법을 원점에서 재논의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골자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사라지는 전통지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새 주소사업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영암지역에서도 마찬가지 생각이 많았다. 군민 B씨(71·신북면 거주)는 “마을의 고유이름은 일제 때 바뀐 것이 많다. 하지만 어쨌든 신북면 행정리처럼 그 마을의 풍수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이름이 많고 어떤 곳은 마을 이름에서 전통과 미풍양속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많은데 일거에 폐지된다면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주민들의 이런 주장은 ‘우리 지명은 인문사회, 역사문화, 자연환경적인 문화의 소산물’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으로, 이들은 심지어 “전국의 ‘리(里)’와 ‘동(洞)’이 일시에 사라지면 문화적 상상력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을 잃게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 ‘역사’와 ‘상상력’도 실종위기
이밖에 새로운 도로명 주소가 서양, 특히 기독교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불교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즉 ‘길을 따라 역사가 태동하는 것은 서양 기독교 중심의 사고’이며 ‘거의 대부분 사라지게 되는 불교지명은 현 이명박 정부가 기독교 정권이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출향한 향우들을 중심으로는 마을이 간직했던 역사와, ‘00마을’하면 생각나는 상상력이 이번 새 주소사업으로 사라지게 될 것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덕진면 출신의 향우 C씨(50)는 “어린 시절 마을 단위로 뛰어놀던 추억이 새 주소사업 시행과 함께 사라지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기존의 마을이름이 갖고 있는 역사성과 안정성, 장소성은 이제 찾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이제 새 주소사업은 이미 전국에 동시 고시가 된 마당이므로 시행은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드러난 문제점들이나 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불편함 등은 그냥 간과해서는 안 되는 만큼 이를 해소할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편집국장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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