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보전 중층복원 계기 대사찰 면모 일신 월출산 도갑사 ‘천년고찰’의 위상 찾다 편집국장 기자 yanews@hanmail.net |
2011년 11월 11일(금) 10:32 |
심검당, 선불당 등 전각 14채 복원·신축 웅장한 寺勢 되찾아
불교대학, 도선국사예술제, 템플스테이 등 문화소통로 역할도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호남의 소금강’이라 부르는 국립공원 월출산.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한 기(氣)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듯 넉넉하게 자리한 천년고찰 도갑사. 한때 건물규모가 966칸에 달했다는 이 도갑사가 천년고찰의 위용을 되찾아가고 있다.
2009년4월 대웅보전이 중층 복원된 것이 그 계기다. 심검당, 산신각, 세진당, 선불당 등 여러 건물들이 속속 복원 또는 신축됐다. 이제 비로소 과거 웅장했던 사세(寺勢)도 느껴질뿐더러 국립공원 월출산을 찾는 이들이 반드시 둘러보는 명소이자 영암지역사회의 문화 창달의 구심점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도갑사가 천년고찰의 위용을 되찾는 데는 지난 2004년3월 주지로 취임한 월우스님의 공을 빼놓을 수가 없다. 취임 이래 올해까지 도갑사 복원을 위해 끌어들인 굵직한 국·도비만 70억여원에 달한다. 소소한 사업비까지 넣으면 10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군 관계자는 설명한다. 대웅전 중층복원은 월우스님의 뚝심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이후 지어낸 무려 13동의 건축물 모두 그가 발로 뛰어가며 얻어낸 업적들이어서 무척이나 값지다.
■ 도갑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도갑사는 ‘월출산에 있는데 일찍이 도선(道詵 827-898)이 머물렀다’고만 쓰여 있다. 도갑사사적(道岬寺事跡)에도 유사한 기록이 있다하나 정확한 창건연대나 창건내력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다.
반면에 중창기록은 여러 곳에 남아있다. 영암 출신인 수미왕사(守眉王師)가 세종 3-10년(1457-1464)간 대대적인 중창을 한 뒤 광해군(1603-1623) 때 중수했다.
특히 수미왕사가 도갑사를 중창했을 때 기록에는 그 사세(寺勢)가 상세하다. 전각과 요사채 등 건물규모가 966칸에 달했고, 소속암자는 12개였으며, 재적한 승려 수는 무려 730명, 대적암(大寂庵)에서 공부하는 승려는 50명이나 됐다는 것이다. 숙종8년(1682)에 만들어졌다는 길이 4.7m에 달하는 대형 석조로 미뤄 천년고찰 도갑사의 위용은 17세기 후반까지 이어졌음이다.
■ 1977년 화재가 전화위복
이런 대사찰이었지만 임란과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됐다. 1977년에는 화재로 문화재였던 대웅보전마저 전소됐다. 참배객의 부주의 때문이었지만 보잘것없는 사찰로 전락한 도갑사는 더욱 설 곳이 없어졌다. 3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1981년 복원했지만 과거 천년고찰 도갑사의 본모습을 되찾기는 역부족한 일이었다.
도갑사가 본격적인 제 위상을 찾는 계기가 된 사건은 대웅보전 중층복원사업. 2004년 도갑사 주지로 취임한 월우스님은 3년여에 걸친 복원에도 불구하고 균열이 생긴 대웅보전을 해체해 다시 복원하기 위해 목포대 박물관에 발굴조사를 의뢰했다. 이를 위해 사찰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국비와 전남도 및 영암군의 예산 23억3천400여만원을 지원받았다. 발굴조사결과를 토대로 무려 2년6개월 동안의 고증작업을 통해 대웅보전이 중층규모임을 확인했다. 1차 설계에서 76평 규모였던 대웅보전은 현재 모습처럼 110평 규모의 중층구조로 바꿨다. 과거 30평 규모에 불과했던 초라한 대웅보전이 지금의 웅장한 규모로 바뀌는 데는 5년의 작업기간이 걸렸다.
250여㎡에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로 지어진 대웅보전은 건축형태는 와부중층, 내부통층, 온칸 몰림 방식에 건축양식은 조선 초기 다포식 팔짝지붕에 막새기와를 얹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뤘다. 홍송으로 삼존불을 봉안했고, 내부에는 목조로 제작된 후불탱화를 모셔 복원의 의미를 더했다.
■ 14개 전각 복원 및 신축
대웅보전 중층복원은 다른 전각들의 복원 또는 신축에 잣대가 되고 기폭제가 됐다. 단층의 초라한 모습이 중층의 웅장한 모습으로 변모함에 따라 사찰 전체의 위용을 다시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월우스님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2006년 심검당을 복원한 것을 비롯해 산신각을 건립했다. 심검당은 ‘마음을 여는 곳’이요, 산신각은 월출산의 영험한 정기를 다스린다는 산신을 모신 곳이다. 2007년 종각 이전에 이어 2008년에는 세진당 이전 후 선방을 개축했다. 넉넉한 마음으로 부처님이 되는 곳 ‘선불당’, 천분의 부처님이 각자의 표정을 짓고 있는 ‘천불전’, 들어가면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미소당’ 등의 전각도 모두 그가 심혈을 기울여 갖춰놓은 건물들이다. 현재 1차로 10억원의 국비가 투입되어 공사가 진행 중인 누각 및 장락복원만 끝나면 도갑사는 옛 천년고찰의 위용을 완전히 되찾게 된다.
■ 지역사회 문화창달의 중심
월우스님의 도갑사 본모습 찾기는 전각의 복원 또는 신축에만 그치지 않았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도선국사 문화예술제는 신라의 4대 고승이자 풍수의 대가인 도선국사의 정신을 기리기는 행사일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지역민들에게 문화와 예술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월우스님이 2009년 개설한 ‘영암불교대학’은 불교에 관심 있는 주민을 대상으로 불교의 기초교리와 불교문화, 역사, 경전 등을 강의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할 때 정토세계가 이뤄지고 천년고을 영암도 크게 발전한다는 믿음에서다.
문화로부터 소외된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한 ‘낙도어린이 여름 숲속학교’나 일반인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참된 나’를 찾는 템플스테이, 해마다 주기적으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돕기에 나서는 일들도 천년고찰로 본모습을 찾은 도갑사여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인터뷰 도갑사 주지 월우스님
“전남도와 김일태 군수 지원에 감사”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웅보전이 화재로 소실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중층복원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고, 중층 대웅보전에 어울리도록 여러 전각을 세우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많은 국·도비를 확보하는 데는 전남도와 특히 김일태 영암군수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월출산 도갑사가 천년고찰의 본모습을 되찾는 일에 매진해온 월우스님은 대웅보전 중층복원으로 시작된 도갑사 복원불사를 일일이 회고하면서 특히 전남도와 영암군의 지원에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대웅보전이 화재로 소실되었기에 중층복원이 가능했다는 월우스님의 지적은 문화재 복원과 이를 위한 예산확보의 어려움을 뜻한다. 당시 지방문화재였던 대웅보전이 지금까지 그대로였다면 아무리 고증자료가 확보되더라도 예산신청에서 구체적인 집행까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 이는 사찰의 요사채 하나 짓는데 필요한 국·도비를 확보하는데도 마찬가지다.
“정부 관계자가 ‘내년에 합시다’고 말하고 나면 실제 예산이 지원되는 데는 3-4년이 걸려요. 한 두 사람에게 부탁해서는 턱도 없어요. 도갑사 복원불사 하느라 찾아다닌 곳, 만난 분 셀 수가 없을 정도예요.”
주지 취임이래 7년동안 무려 100억원에 육박하는 국·도비를 끌어와 대웅보전 등 14개 전각을 완성한 월우스님은 그간의 과정을 낱낱이 회고하면서도 대사찰의 면모를 되찾은 도갑사를 둘러보며 연신 흐뭇한 표정이었다.
편집국장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