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갑사 소풍길 (상)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1년 12월 23일(금) 10:29
장천초등학교에 다닐 때 소풍을 가게 되면 언제나 도갑사로 갔다.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도 알맞았지만 당시에는 그만한 소풍 대상지도 있지 않았다.
이십리 길인 도갑사로 가는 소풍은 대게 봄철에 있었다. 소풍날이 정해지면 전날 밤은 잠을 설치기 마련이었다.
생활권역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는 것처럼 틀에 박혀 있었다. 나는 서호면의 경계를 벗어난 경우가 많지 않았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따라 십리 거리에 위치한 독천 장날 장터를 구경하는 것이 재미가 있어 가급적 자주 따라 다닌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기회만 주어지면 생활권역의 경계를 넘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다른 나라의 생활’이라는 교과서를 누군가가 영암읍 서점에 가서 가져와야 했다.
담임이신 최대원 선생님께서 그 교과서를 가져올 희망자는 손을 들라고 하셔서, 나와 친구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나는 영암읍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영암읍을 구경하고 싶어서 자원을 했다. 군서면 성양리 출신인 김순동 선생님 인솔하에 삼십리 길을 걸어 영암읍에 가서 교과서를 나누어 들고 오후 늦게 돌아 왔지만 피곤함보다는 재미가 더 했다. 그때 처음으로 영암읍에 가본것이 좋았다.
나는 그렇게 어딘가 가보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러기 때문에 소풍가는 것을 좋아했다. 소풍은 장천에서 신작로 길을 따라 신복천을 거쳐 구림 신근정에서 도갑사 산길로 접어들어 가는 코스였다. 당시에는 서호강에 학파농장 간척지공사가 진행 중이었으나 준공이 안 되어 지름길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 도로를 따라 멀리 걸어야만 했다.
‘월출메 가로 서서 수자리를 두르고 은적산 맑은 정기 흐르는 이 곳….’ 교가를 목청껏 부르면서 걸어가는 소풍길은 즐겁기만 했다. 확 트인 하늘과 땅, 들판과 월출산을 바라보면서 봄 내음을 맘껏 호흡하며 걷는 재미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서호로 들어가는 외줄박이 길이 시작되는 신복촌에 이르면, 영암읍에서 독천을 거쳐 용당리로 뻗어가는 큰 도로가 가로 지른다.
그 길을 왼쪽으로 꺽어 메밀방죽을 지나 한참을 걸어, 구림에 들어서면 역사 오랜 벚나무 가로수가 꽃이 만발한채 우리를 맞는다. 그때 본 그 벚꽃들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내 머릿속에 그대로 꽃 피어 있다.
지금은 1980년대 초 영암읍에서 독천까지 도로 포장이 되고 길 양편에 심은 벚나무가 왕인축제 때면 벚꽃이 장관을 이루어 상춘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그 벚나무 가운데 내가 어렸을 적에 본 구림 벚나무는 풍상이 짙게 뭍어난 채, 토박이 처럼 고즈넉이 서있다.
나는 지금도 그 길을 지나갈 때면, 이젠 세월이 흘러 고목이 되어버린 벚나무를 보면서 그 시절을 환하게 떠올리곤 한다.
신근정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도갑사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어가면, 유리알같이 맑은 시냇물이 돌바닥을 씻으며 저들만의 언어로 노래하며 흘러가는 모습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지금은 저수지가 생겨 길이 달라졌지만 당시의 길은 개울을 따라 나 있었고 잡목이 우거져 아늑한 숲길이었음으로 운치가 넘쳤다.
올라가는 길의 개울가 오른쪽 바위에는 도선국사께서 어렸을 때 내디뎠다는 작은 발자국이 또렸이 박혀있다. 신을 벗고 내 발바닥에 맞추어 보기고 하였다. 힘이 센 신동 같은 분이라고 생각 되었다.
거기에서 조금 올라가면 왼쪽에 크지 않은 돌에 남자의 고환이 놓인 자국이 있다. 도선국사가 어렸을 적 그 자국을 냈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신비한 일인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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