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과 월출산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2년 02월 03일(금) 10:22
정찬열
LA남부한국학교장
영암군 미국홍보대사
군서면 도장리 출신
‘큰바위 얼굴’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이니까, 벌써 50년 전 쯤의 일이 되었다.
어느 골짜기에 성자와 같은 모습을 한 큰 바위 얼굴이 있었다.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이 지방에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이 타나날 것이라는 전설을 듣는다. 소년은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 기대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지방 출신의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 잘하는 정치인, 글 잘 쓰는 시인을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저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얘기가 좀 길어졌다. 월출산에 큰 바위 얼굴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들었다. 뉴스를 들으면서 큰 바위 얼굴 이야기가 떠올랐다.
3년 전, 국토종단 중에 월출산을 올랐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르고 있었다. 천황봉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장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부산 등지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왔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정상에서 구정봉을 바라보았다.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아도 사람의 얼굴로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니스트의 큰 바위 얼굴을 상상하고 기대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 모르고 지냈는데 알고 보니 바위가 사람 얼굴을 닮았더라는 발견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과 관계없이 우리 영암사람들은 대대로 월출산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 산과 함께 살다가 그 품속에서 생을 마쳤다.
사람은 그 부모를 닮기 전에 태어나 자란 산천을 먼저 닮는다고 했다. 산천은 사람을 그 품에 안아 키워낸다. 영암 출신이면 누구나 월출산을 가슴에 담고 있으리라 믿는다.
어릴 적,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외지로 이사를 다니면서도 고향을 생각하면 늘 월출산이 떠오르곤 했다.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도 그 당당하고 기백 있고 수려한 월출산의 풍광이 많이 그립다. 내가 살아온 한 생이 그 풍경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최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월출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일이 지역경제에 다소 보탬이 될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대가로 산이 얼마나 많이 망가지고 몸살을 할 것인지 보지 않아도 빤하다. 한 번 훼손 된 자연은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다. 작은 걸 탐하다 큰 것을 잃을까 걱정이다.
실제로 미국은 물론 세계의 유명한 산을 다녀보아도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월출산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소중하게 지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영암의 보물이다.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자란 소년 어니스트는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성자가 된다. 월출산 큰 바위 얼굴은 소중한 발견임에 틀림없지만 닮아야 할 대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당당하고 기백이 넘치는 수려한 풍광을 지닌 월출산. 저 모습이야 말로 우리 영암인이 닮아야 할 진정한 얼굴이 아닐까.
저 얼굴에 상처를 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얼굴을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 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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