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은 제헌국회 이래 제19대 총선까지 단독 선거구(7차례)였거나 인근 장흥 또는 장흥·강진·완도와 합친 선거구였지, 신안이나 무안과 같은 선거구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영암군민들의 상실감은 매우 크다. 이러다간 앞으로 영암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하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영암군이 소속된 역대 국회의원 선거구 변화를 보면 1948년5월10일 구성된 제헌국회부터 1960년7월29일 실시된 제5대 총선까지 선거구는 영암군 단독선거구였다.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제13대(1988년4월26일) 총선과 14대(1992년3월24일) 총선 역시 영암군 단독선거구였다.
영암군이 인근 시군과 합쳐진 복합선거구가 되기 시작한 때는 1963년11월26일 치러진 제6대 총선으로, 이때 만들어진 영암·강진선거구는 제7대(1967년6월8일)와 제8대(1971년5월25일) 총선까지 계속됐다.
이어 제9대(1973년2월27일) 총선부터 제12대(1985년2월12일) 총선까지는 무려 4개 군이 합해지기도 했다. 영암군에 강진군, 장흥군, 완도군 등이 합해져 선거가 치러졌던 것이다.
또 제15대(1996년4월11일) 총선부터 17대 총선(2004년4월15일)까지는 '영암·장흥선거구', 제18대(2008년4월9일)부터 19대(2012년4월11일) 총선까지는 '장흥·강진·영암선거구'로 만들어져 선거를 치렀다.
모두 19차례의 총선에서 영암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한 선거는 영암군이 단독선거구였던 7차례를 포함해 모두 11차례였다. 나머지 8차례는 영암군과 합쳐진 지역 출신이 당선됐다. 특히 영암군이 다른 지역과 합해진 복합선거구였던 12차례의 총선에서 영암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한 것은 단 4차례뿐이었다.
영암 출신으로 제헌국회의원이었던 낭산 김준연 선생은 제2대 총선에서 역시 영암 출신인 유인곤씨에 패배한 것을 제외하곤 제3대 총선에서 제6대 총선까지 내리 4선을 더했다.
하지만 제7대 총선에서 강진 출신 윤재명씨가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10대(1978년12월12일) 총선까지 내리 영암 출신 국회의원을 내지 못하다 중선거구제였던 제11대 총선에서 유재희씨가 당선됨으로써 그 맥을 이었다. 그러다가 소선거구제로 바뀐 제13,14대 총선에서 유인학씨, 복합선거구가 된 제17대(장흥·영암선거구)와 18대(장흥·강진·영암선거구) 총선에서 유선호씨가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영암 출신 당선자 배출을 이어갔다.
한편 영암·무안·신안선거구가 만들어진데 대해 영암군민들의 실망감이 매우 크다. 그동안 19차례의 총선이 실시된 지난 70여년 동안 영암군은 인근 장흥군이나 강진군, 완도군 등 세지역과 분리·통합을 반복했지 무안·신안군과는 단 한 차례도 같은 선거구인적이 없기 때문이다.
군민 A(59·영암읍)씨는 "그동안 같은 선거구였던 장흥군이나 강진군과는 비록 관주도였기는 하나 지속적인 교류협력이 있었고 완도군과도 상당히 밀접한 생활권역을 형성했었지만 무안군과는 남악신도시 형성에 따라 대불산단과 현대삼호중공업 근로자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연관성 외에는 사실상 동질성이 거의 없는 지역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무엇보다 복합선거구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영암군의 목소리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어 군민의 한사람으로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군민 B(52·삼호읍)씨도 "영암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하면 덜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지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현안사업을 해결하는 일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될까 걱정이다"면서, "선거과정 역시 인물이나 정책대결은 실종되고 출신지역별로 지지를 호소하게 되고 유권자수가 많은 지역에서 당선자를 독식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점도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