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2일 영암의 농협조합장들과 판매담당 직원들은 경남 진주의 한 선별장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풋고추 선별장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선별장에서 연간 50억원의 공동선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작은 선별장에는 박스 제함기, 소포장 결속기, 선별대, 자바라 등이 빽빽하지만 작업하기 편안하게 늘어서 있었다.
고작 수 백만원 짜리 박스 제함기가 박스접는 인건비를 모두 해결하고, 1백만원 짜리 소포장 결속기는 인부 3~4명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
이러한 선별장이 지역 농업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지 열 마디 말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더구나 시설채소를 중심으로 연 200여억원을 공동선별, 공동계산으로만 판매하고, 참여농협마다 선별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삼성홈플러스와 공급계약을 체결하여 전국 모든 점포에 납품하고 있다는 노호종 과장의 설명은 마치 꿈과 같았다.
영암과 닮은 꼴 진주
진주는 풋고추, 수박 등 시설채소가 많이 나고, 배와 단감을 많이 생산하는 영암과 비슷한 지역이다. 작물의 전체적인 생산면적은 영암보다 큰 편이지만, 작물의 구성은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진주의 시설채소는 주로 겨울철에 집중돼 있어 겨울철 시설채소 주산지로 이름이 높다. 이런 진주 농산물 명성을 더욱 높인 것이 ‘초로미 브랜드’로 대변되는 연합마케팅 사업이다.
생소한 분야 도전과 개척 농협진주시지부는 2002년 3월 강원도와 충북의 햇사레, 제주도 등지와 함께 농협중앙회가 주도하는 첫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겨울철 녹광과 피망의 최강 주산지인 진주에서 공동선별, 공동계산의 연합사업을 추진하여 본격적인 농협판매사업을 추진해보자는 강한 의욕이 시발점이었다.
당시 연합마케팅사업은 대부분 과일중심이었고, 채소류 공동선별 사례가 많지않아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할 처지였다.
농협진주시지부를 중심으로 시지부 담당자인 노호종 대리와 동부농협, 금산농협, 중부농협, 대곡농협의 담당자들은 2~3일에 한번씩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거듭했다.
초기 갈등이 강한 신뢰로 이어져
‘초로미’라는 브랜드로 풋고추와 피망을 시장에 처음 공동 출하하자 가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자 농가들은 작목반이나 영농조합법인보다 가격이 낮다며 손실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업단은 농가들을 설득시키면서 지속적으로 판매사업의 경쟁력을 높여나갔다. 출하주기 조정과 출하량 조절, 선별등급 조절 등을 높은 가격을 유도했다.
공동선별의 장점을 살려 하품으로 처리되는 13cm 이상의 큰 풋고추만 별도로 선별해 ‘튀김용 고추’로 출하, 오히려 특품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는 성과도 올렸다.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풋고추를 나란히 박스에 담거나, 선도 유지를 위해 중간 중간에 습기를 흡수해 주는 습자지를 넣어 다른 상품과 차별화 시키는 전략도 주효했다. 공동선별, 공동출하가 개별출하보다 가격이 높다는 결과에 농가들의 신뢰도가 높아졌다.
처음의 갈등을 지속적인 설득과 판매경쟁력 강화로 돌파하게 되자, 오히려 농가들이 열정적으로 마케팅을 지지하게 됐다.
지속적인 사업의 성장 사업시스템을 마련했던 2003년에는 17억원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미미한 수치였지만 이후 매년 2배 이상의 판매금액이 늘어나는 성장을 보였다.
2004년 36억원, 2005년 66억원, 2006년 106억원, 2007년 120억원, 2008년 189억원으로 급성장 행진을 계속했으며, 급기야 2009년에는 226억원이라는 매출을 달성했다.
참여농협도 초기 4개 농협에서 점차 8개 농협으로 늘어갔고, 취급 작물도 첫해 풋고추, 피망 2개 품목에서 청양고추, 애호박, 딸기, 단감 등 총 9개 품목으로 확대됐다.
농가 정예화로 어려움 극복
사업이 성장하면서 어려움도 커갔다. 2004년 공동출하작목반 중 일부가 해체되면서 절반이상의 농가가 이탈하면서 큰 위기를 맞았지만, 원칙을 무너뜨리면 사업자체가 붕괴된다는 판단으로 오히려 기준을 강화했다.
협약서를 개정해 회원농가를 정예화시키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농가는 사업참여를 금지시키는 강도높은 조치를 취하면서 확고한 의지를 가진 농가만 참여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노호종 단장은 “사업의 원칙을 심사숙고하여 정하고, 이를 끝까지 밀고나가지 않으면 협동조합사업은 실패하게 된다”며 “단기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농가의 대표들과 함께 농가를 설득하면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300억 매출 목표로 진주농협연합사업단은 시설채소류 공동선별, 공동계산조직으로서는 전국 최고, 최대의 조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하고 발전시켜야할 과제도 많다.
가장 시급한 것이 대형산지유통센터(APC)의 설립이다. 6개 선별장으로도 농가의 물량을 해소하지 못해 거점산지유통센터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진주시청에 건의한 결과 대형산지유통센터를 설립하는 계획이 수립된어 착공식을 가졌다.
대형산지유통센터가 완공되는 2010년부터는 300억 이상으로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선별장이 부족하여 대기하고 있는 150농가를 회원으로 확보하여 400명의 회원으로 운영되는 독보적인 시설채소 연합사업단의 위치를 굳힐 전망이다.
/변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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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노 호 종 진주농협연합사업단장
“사업비전 공감대 형성 주효”
-연합마케팅 성공요인의 핵심은 무엇인가?
참여농가와 농협이 연합사업에 대한 필요성을 깊이 이해하고 사업이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성공요인이다. 다음으로 유능한 판매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참여농협의 유능한 인력을 연합사업단에 파견하여 시군 전체를 이끌어 가도록 해야한다.
-풋고추를 소포장으로 납품하면 선별비가 너무 많이 들지 않나?
홈플러스 전점에 소포장 풋고추를 납품하고 있다. 소포장을 하면 선별이 더 까다로워지고 소포장 비용도 늘어나지만 그만큼 출하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어 산지 입장에서는 해볼만한 일이다. 소포장 절감을 위해 소포장 자동기계를 도입했다. 비용절감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업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초기 농가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측면에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초기에는 판매담당자의 열정이 요구되고, 갈수록 다양한 작은 개선책이 사업경쟁력을 강화시킨다. 참여주체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학습과 토론이 필요하다.
-앞으로 연합사업단의 운영방향은?
그동안의 성과에 자만하지 않고, 앞으로도 산지유통 혁신을 통해 지역농산물의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겠다. 중감 마진을 줄여 농가 수취가를 높여 나가고, 농협중앙회가 올해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조합별 공동선별출하회를 육성하여 연합사업단의 저변을 확대해 가겠다.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