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과 영월의 도시재생 지역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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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제천과 영월의 도시재생 지역을 가다

문화관광재단 전고필 대표
여행은 힘을 가진다. 떠날 때 챙겨가는 것들이 많건 적건, 돌아오는 발걸음에는 노독보다는 희망이나 의욕 같은 것이 뭉뚱거리며 따라온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스러움이 바로 여행이다. 그러기에 다른 어떤 것보다 시간이 온통 투영되는 것이 여행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있었던 곳의 보이지 않은 통제권까지 무장해제 해 버리는 힘이 떠남에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이 사실을 적극 실감하며 길 위에 있었다.

영암에서 제천까지는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자가용이나 임대버스 말고는 달리 접근하는 방법이 없는 도시가 바로 중원권이나 강원권이다. 제천은 호반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제천의 제가 둑堤를 사용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래된 저수지로서 제천의 의림지와 전북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를 삼한시대부터 축조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제천의 의림지를 주축으로 호수의 서쪽 호서지방을 이야기한다.

벽골제의 남쪽을 호남지방으로 말하듯이. 조선시대 여성으로서 노마드 반열에 반드시 이름을 올리는 이가 ‘호동서락기’를 지은 김금원이다. 원주에서 14살의 어린 여성이 남장을 하고 의주와 제천을 거쳐 내친김에 금강산까지 물경 1,000Km를 여행하며 남긴 글이다. 이처럼 오래된 저수지를 가지고 있는 동네에 가장 먼저 들린 곳은 “꿀참나무”라는 식당이었다.

상수리 열매를 맺는 참나무를 지칭하여 꿀참나무라 하는 것을 경상도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이곳에도 묵을 가지고 다양한 변주의 요리를 내어놓았다. 이를테면 묵, 전병, 말이, 전, 쌈, 묵밥 등으로 채워진 식단은 그 자체가 보양식으로 빈틈없이 튼실한 상차림이었다.

전에 두 번 들려본 적이 있어서 일행들에게 영암에서의 보양식과의 비교를 주문해 보았다. 근무하고 있는 영암은 흑염소보양탕이나 장어, 짱뚱어, 낙지등으로 이어지는 음식이지만 여기만큼 단품에서 조차 승부를 내는 집은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이런저런 사념들로 가득하면서도 맛난 점심을 먹고 그 뜨락에서 활짝핀 함박꽃까지 반갑게 마주했다. 이제 다음 차례는 제천시 도시재생센터다. 제천역 앞에 건물이 큼직하게 위치했다.

“제천 어번 케어센터”라고 명명된 건물에는 여행자 쉼터, 사회적 경제 비즈니스센터, 패밀리 돌봄 라운지, 지역관광협업센터 등과 함께 오픈 스페이스로 회의실 등이 도시재생지원센터와 함께 입주해 있었다. 관계 공무원으로부터 제천의 도시재생의 역사를 설명 들었다. 맨 처음 민간 주도로 시행했지만 각종의 어려움이 드러나자 본격적으로 공무원들이 사업을 하면서 속도감과 안정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도시재생의 국비를 받아 이렇게 큰 건물도 건립하고, 복합시설이나 공원의 조성, 거기 경관 가꾸기, 자연형 폭포와 수로 만들기 등을 진행하였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는 내내 무언가의 허전함이 들었다. 주민 주체가 빠진 듯이 보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도시재생과가 신설되고 관련 팀들이 각각 들어서면서 행정력의 가속도가 붙게 되고 상대적으로 주민들의 입지는 좁아지거나 경색되었다는 것이 보여졌다. 국비지원사업으로 조성된 거점과 공간에 주민력이 함께 있어주는 것이 당연한 터이다. 그래야 향후 지원이 끝나더라도 건물의 설립목적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고 본 목적에 충실한 쓰임으로 지속되는 것이다.

애초 도시재생이나 문화도시 사업의 근간은 재생이나 창조라는 것 보다는 주민 주체의 동력을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관건으로 상재되었었다. 하지만 여느 지역을 보더라도 서울이라는 도시의 흡입력에 완패를 당해 활동가가 되어야 할 청년인력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고령화된 주민들이 여기저기 동원 되거나 활용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국토부는 마을관리 협동조합 등을 신설하여 운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능동적이고 유연한 마을 조직을 만들어 내는게 힘에 부친 것이 사실이다.

칙칙폭폭999 라는 복합시설에 들렸을 때 1층 공간은 카페와 편의점이 주를 이루고 2층은 주민들이 모두 열쇠인 카드를 찍고 들어오면 언제고 이용할 수 있는 운동시설과 모임방이 갖춰져 있었다. 3층은 게스트하우스로 깔끔한 침실로 이뤄지고 공동주방을 마련해 커뮤니티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역과 인근한 지역의 특성을 배려하며 관계인구의 증진을 위한 방안이라고 보여졌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본디 철도노동자들의 숙소로서 관사가 자리잡은 공간이었던 것을 개운하게 밀어 버린 것이다. 터무니라고 말하는 삶의 흔적을 삽시간에 밀어 버림으로서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증발시켜 버렸다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했다. 비워진 자리에 다시 저렇듯 은하철도999가 같은 이름을 명명하는(원래 이곳의 지번이 999번지라 이름지었다고 설명을 들었지만) 낭만스러움의 뒤안길이 너무 찜찜한 것이다.

기차마을 가든을 만들고 모노레일 같은 것을 배치하여 제천역과의 연계성과 주민들의 추억을 다시 소환해 주려 했다지만 그 흔적을 모두 지워버린 것에 대한 실망이 더 크게 다가왔다. 시내로 들어와 중앙시장 언저리의 번화가를 걸었다. 다음날 개최될 맥주축제 준비로 어수선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이 상가와 상가 사이의 보행로 중앙에 수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근 600여미터를 자연형 수로와 폭포로 꾸미고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늘상 물이 흐르는 실개천 같은 친수 공간 연출은 영암뿐만 아니라 광주나 담양의 시가지에서 조성되면 한결 낳을 듯 싶어졌다. 이렇게 흐르는 물은 모두 수돗물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 여행길에서 곳곳에 이렇게 수로를 보존하고 거기에 붕어나 잉어, 피라미 등 민물 어류와 공생하는 것이 부러웠는데 제천시의 수로는 이런 내 마음을 자극하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이었다. 다시 화산동에 있는 화담이라는 마을창작소를 찾았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1층에서 드라이브 스루 카페와 오픈 스페이스를 운영하고 2층에는 E-스포츠 체험관을 두고 각종 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었다.

노후도가 심했던 마을의 외진 곳을 스마트시티형 도시재생과 우리동네살리기형 뉴딜사업으로 완공되었다고 하며 마을 주민들의 조합인 “화산마루협동조합”이 끌어나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우리는 제천을 떠나 영월로 향했다. 일찍 영월에 도착하여 시내를 걷다가 영월의 산내음 가득한 한정식으로 식사를 하고 숙소인 동강 시스타 리조트에서 1박을 했다. 하마터면 댐이 들어설뻔했던 90년대 말의 기억이 소록소록 나는 곳인데다 영월에 들리면 자주 묵는 곳이어서 모두들 영암의 도시재생이나 정책 아젠다를 가지고 밤이 깊어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눴다.

다음 날 아침 영월문화도시센터를 찾았다. 진달래장의사가 운영되었던 건물을 도시재생의 비용으로 매입하고 리모델링하며 옛 자취와 흔적을 아카이빙하고 불요불급의 공간만 손을 댄 그야말로 손떼 묻은 공간에 입지해 있다. 장의사를 운영했던 옛 모습도 나는 알고 있었기에 죽은이의 영혼을 위로하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곳에서 이제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삶을 어루만지고 토닥여주며 문화가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매개해주는 문화도시센터의 입주는 딱 어울려 보였다.

여행자들의 쉼터이자 짐을 보관하고 정보를 안내해주는 공간에 매주 주민강사가 중심이 되어 14가지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것만 보아도 정말 맞춤한 쓰임이 있어 살아있는 곳이란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맞은편의 영월역 광장에는 잘 다듬은 컨테이너박스를 활용한 굿즈샵이 있어 들렸다. 지역에서 사부작사부작 생각하는 손을 가진 작가들이 공방에서 만든 것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일일매출액을 여쭈었는데 급성장한다는 말씀으로 되돌려 받았다.

작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니 상품에 대한 정보와 신뢰가 확고한 잇점이 있고, 그분들의 성실함이 구매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이제 도시재생과 관련한 현장을 둘러볼 차례. 덕포지구쪽으로 향했다. 영월애 달시장이 운영되는 곳인데 마을 이름이 덕포리라서 그 덕을 Duck으로 읽고 오리를 주인공으로 하여 다양한 심벌을 만들어냈다. 귀여움과 상쾌함이 더해지는 느낌속에서 영월은 영암의 무거움 보다는 무언가를 넘어서는 Young하다는 비교가 더 다가왔다.

다슬기로 유명한 고장답게 다슬기코워킹센터를 조성하고, 무너져가는 상권을 다시 부활하려는 영월애 마켓을 운영하고, 영월드 어울림센터를 통해 실내공연과 전시장 등의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오래된 교회를 랜드마크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꾸어 내는 일련의 과정을 돌아 보았다.

편안하게 고개를 넘어가라는 뜻의 영월은 제천의 속도감이나 일체감 보다는 다양한 현지인들의 의견과 방문객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꼼꼼히 체크하여 구현해내는 느릿하고 말랑말랑한 포용성이 다분히 느껴지는 그런 벤키마킹여행이었다. 이 두 가지 방식을 절묘하게 결합해내는 방식이 지금 필요한 시점이란 것을 절감하면서 말이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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