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군수 우승희)이 깊어 가는 가을, 몸도 마음도 생각도 차분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지역 걷기 명소 등을 소개하고 나섰다.
전국 걷기 동호인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남도 명품 ‘기찬묏길’부터, 지난해 개통한 국립공원 탐방로 ‘하늘아래첫부처길’, 천연림에 단풍나무를 심어 멋을 더한 숲길까지 영암군은 요샛말로 ‘걷기 맛집’으로 손색이 없다.
반나절 걷기만으로도 남다른 기운의 영암 월출산 정기는 물론이고, 가을 남도의 상쾌한 공기가 몸과 마음 깊숙이 들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영암이 고대국가 ‘마한의 심장’임을 증명하는 2,000년이 넘은 ‘구림한옥마을’은 고즈넉함 속에서 만추의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마을 가까이 ‘도기박물관’ ‘하정웅미술관’ ‘왕인박사유적지’를 거니는 문화 산책은 결실의 계절 가을에 역사와 문화의 양식을 실하게 채워 준다.
영암 삼호 앞바다를 개방해 만들어진 야간 선상 갈치낚시터는, 짜릿한 손맛을 찾아온 강태공들로 북적이고 있다. 강태공과 함께 영암을 방문한 가족들은 밤바다 낚시의 특별한 낭만에 푹 빠져 이색 가을을 만끽하는 중이다.
한 폭 동양화 속 인물이 돼보고 싶다면, 평평한 들녘에 우뚝 솟아오른 기암괴석의 월출산국립공원 등반이 좋다. 무릎 관절이 걱정이라면, 동양화 같은 시종일관 월출산을 바라보며 평탄하게 걷는 기찬묏길이 제격이다.
월출산의 북서면 둘레를 넘나드는 기찬묏길은 산길과 오솔길, 마을길, 황토맨발길, 아스팔트가 어우러진 걷기 길의 대명사다. 이미 남도 명품길로 전국 트레커들에게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총 33km에 달하는 전체 구간 중 ‘월출산 천황사 주차장-(1구간, 5.2km)-기찬랜드-(2구간, 7.3km)-도갑사 입구-(3구간, 5.2km)-왕인박사유적지’로 이어지는 코스는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으로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과는 달리, 기찬묏길은 도심에서 1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다. 많은 도시민이 주말 걷기 장소로도 애용하고 있는 이유다.
기찬묏길을 걸으며 맛보는 국립공원의 수려한 풍광과 생태, 추수가 한창인 영암의 들녘, 월출산이 뿜어내는 넘치는 기운은 비교 불가의 충만함을 선사한다.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최고의 활력 충전소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지난해 영암군은 기찬묏길 코스 중 국민여가캠핑장에서 산성대 탐방로 입구 660m에 황토맨발길을 조성했다. 이곳은 전국 맨발걷기족들이 끊이지 않고 찾고 있어 ‘길 속의 특별한 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기찬묏길 중간중간에서 국민여가캠핑장, 기찬랜드, 가야금산조기념관, 한국트로트가요센터, 조훈현 바둑기념관, 곤충박물관, 대동제, 왕인박사유적지 등도 만나볼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땅에서는 가장 높고, 하늘에서는 가장 가까운 한국의 보물을 만나는 길이 있다. 지난해 9월 영암군과 월출산국립공원이 함께 하늘아래첫부처길을 열었다.
월출산기찬랜드~대동제~용암사지에 이르는 5km 구간을 걸으면 국보 제144호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을 최단 거리로 만나볼 수 있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해발 600m에 있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한국 보물이다.
하늘아래첫부처길은 영암읍 월출산기찬랜드 주차장에서 출발해 2시간 남짓이면 어렵잖게 오를 수 있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바위가 많은 다른 월출산 등산로와는 달리, 흙길·숲길이 대부분이다.
2/3지점까지 계곡을 끼고 있어 색다른 월출산을 맛볼 수 있다. 마애여래좌상 아래에는 용암사지터와 3층석탑이 남아있어 가을 산행의 운치를 더한다.
하늘아래첫부처길은 월출산국립공원과 대곡제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전까지 많은 이들이 월출산을 오르내리던 유서 깊은 탐방로였다. 도선국사, 최지몽, 김시습, 정약용 등 역사 인물이 이 길을 이용했다고 알려져 ‘명사탐방로’로도 불렸다.
가을하면 단풍, 단풍하면 영암군 덕진면에서 신북면으로 이어지는 백룡산 숲길이다. 백룡산은 월출산 북쪽에 넓은 자락을 펼치고 있다. 그 속살인 백룡산 숲길은 소나무·편백나무 같은 천연림과 영암군이 새로 조성한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임도다.
백룡산 숲길은 덕진면 한국제다 영암제2다원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신북면 용산리까지 이어지는 6.1km의 높낮이가 완만한 구간으로, 누구나 가벼운 차림으로 2시간이면 걸을 수 있다.
특히, 이 길은 지난해 9월 전라남도가 ‘가을철 걷고 싶은 숲길’ 공모 최우수 숲길로 선정될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가을에 천연림과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뤄 울긋불긋 장관을 이루고, 등반객에게 산림욕까지 선사하는 1석 2조의 즐거움이 있다.
나무 터널을 벗어나면 눈앞에 펼쳐지는 영암제2다원의 차밭과 들녘 끝에 우뚝 서있는 월출산의 자태는 눈이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가을을 문화로 알차게 채우고 싶은 이들에게는 영암 구림한옥마을이 있다. 정겨운 한옥, 황토돌담 골목길과 고목, 오랜 정자가 방문객을 반기는 구림한옥마을은 2,0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구림한옥마을의 역사는 기원전·후 영암 일대가 고대국가 마한의 심장이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왕인박사유적지와 상대포역사공원은, 이 마을이 백제 왕인박사가 태어난 곳이고,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 등을 전해준 고대 국제교류사의 중심이었음을 알려준다. 상대포의 야경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영암군이 조성한 경관조명은 가을밤의 색다른 운치를 관광객에게 선사한다.
마을 이름 ‘구림(鳩林)’은 풍수의 대가인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에 나오는 ‘비둘기 숲’에서 따왔다. 주변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도갑사가 있고, 구림에서 출생한 고려 최지몽은 도선국사가 풍수로 펼쳐놓은 인문지리를 천문지리까지 확장했다.
튼실한 역사를 자랑하는 구림마을 주변에 있는 도기박물관과 하정웅미술관, 목재체험장 등도 빼놓지 않고 둘러봐야 한다. 도기박물관은 국내 최초 고온 유약도기인 ‘시유도기’를 포함해 3~10세기 영산강 일대가 도시 산업단지임을 입증하며 그 명맥을 오늘까지 이어가고 있다. 부모님 고향 영암에 재일교포 하정웅 선생이 기증한 예술품 컬렉션 등으로 알찬 하정운미술관은 이 가을 방문객의 예술 감수성을 절정으로 이끈다.
오병준 영암군 군정홍보과장은 “사색과 수확의 계절 가을, 영암의 걷기 길과 문화 산책, 이색 낚시터 등이 관광객의 몸과 마음, 낭만까지 풍성하게 채울 채비를 마쳤다. 아름다운 영암에서 특별한 가을 추억을 만들어보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승우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