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보고자로 나선 이영현 사무국장은 영암군에서 추진 중인 양달표준영정 제작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열린 4차에 걸친 회의 내용을 소상하게 보고하였다.
먼저 수도권 사학과 교수들로 구성된 ‘선현심의소위원회’위원들의 조언에 따라 양달사의 사망 일자를 ‘1557년 12월 20일’에서 미암 유희춘(眉巖 柳希春)의 『미암일기(眉巖日記)』를 근거로 ‘1571년 10월 7일 이후 행적 미상’ 혹은 ‘미상’으로 하기로 결정했음을 보고했다.
이는 1571년 당시 전라도관찰사였던 유희춘의 『미암일기』가 임진왜란 당시 『선조실록』 작성의 토대가 되었던 점을 감안한 것으로, 지금까지 각종 문집과 족보 등의 기록보다 『미암일기』를 근거로 하자는 위원들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1633년 이후 지금까지 족보와 각종 비문 등에 기록된 ‘1557년 12월 20일’ 사망 일자는 그대로 두되, 추후 안내판을 추가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지난 12월 4일 개최된 복식심의소위원회 결과에 따르면 양달사의 영정은 을묘왜변 당시의 연령인 37세 전후반 연령대에 화살통을 멘 입상(立像)으로 그리기로 했다. 특히 고대부터 상중(喪中)에 관직에 나가거나 전투에 출정할 때는 상복에 먹물을 들인 묵최(墨縗) 차림으로 나갔다는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자료와 『양달사 의병장 문헌집』 등의 기록을 근거로 묵최 복장으로 그리는 것이 좋겠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밖에도 1555년 을묘왜변 당시 양달사 의병장뿐만 아니라 형 양달수와 동생 달해, 달초 등도 함께 참전하였다는 의미에서 제주양씨주부공파문중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위패 봉안식 준비 과정도 상세하게 보고되었다.
지난 3월 도포면 기관장들이 연명으로 양달사 현창사업에 협조해 달라는 통문을 영암향교에 전달했고, 영암향교 유림들이 만장일치로 여기에 동의하여 사장관(四掌官, 전주 나주 순천 남원) 향교와 성균관에도 통지한 데 이어, 성균관 등에서도 동의한다는 답통(답장)이 도달함에 따라 위패 봉안 등의 절차가 완료되었음을 보고했다.
따라서 추후 영정봉안식 개최에 즈음하여 위패 봉안식도 개최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암 유림들을 중심으로 양달사 사당 건립 건의가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이날 회의를 주관한 장만채 회장은 지금까지 5년간의 성과를 회고하면서, ‘양달사현창사업회가 영암군의 적극적인 성원으로 『양달사 장군 문헌집』과 『양달사 의병장과 영암성』 등을 발간하여 크게 내실을 다졌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영암군민의 자긍심을 되살리고 영암을 의와 충효의 고장으로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회원 모두가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2019년 9월 25일 출범한 양달사현창사업회는 경향각지 200여 명 회원들이 참여한 비영리민간단체로, 1555년 을묘왜변 당시 영암군민들을 구한 영암성대첩의 주역인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장군의 현창사업은 물론 영암을 충효의 고장으로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이승우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