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시행 들어간 도로명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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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행정

전면시행 들어간 도로명주소

주민들 냉담 무관심 여전…겉으론 차분한 분위기

택배 집배원 애경사 주민 등은 주소 찾기·변환에 곤욕
공동체문화 실종우려 현실로…“마을이름 병기해야”지적
새 주소체계인 도로명주소가 2014년1월1일부터 법정주소로 전면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서 혼선과 혼란이 초래되고 있으나 영암지역은 되레 차분한 분위기다. 군이 조기정착을 위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는 등 심혈을 기울인 탓도 있지만 이보다는 주민 대다수가 도로명주소에 대해 여전히 냉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주민들은 ‘공공기관 전용주소‘ 쯤으로 여기는 등 무관심도 여전히 팽배해 있는 것이 더 큰 이유로 보인다.
또 새 주소를 당장 사용해야 하는 택배회사나 일부 주민들에게서는 한결같이 “몹시 불편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특히 새해 들어 갑자기 알려야할 애경사가 생긴 주민들은 마을이름 대신 바뀐 도로명주소를 일일이 확인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도로명주소는 2011년7월29일 전국 일제고시를 통해 법정주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익숙하지 않은데다, 사용빈도 또한 현저하게 낮아 종전의 지번주소와 병행해 함께 쓸 수 있는 기간을 2013년12월31일까지 연장한 바 있다.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됨에 따라 그동안 조기정착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군은 주민들의 불편 또는 불만 등의 민원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문제제기는 없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도로명주소를 당장 사용하고 있는 생활현장에서는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택시영업을 하는 P(51)씨는 “영암에 거주하는 주민들이야 새 주소를 말하며 데려다 달라는 이들이 전무하고, 예전에 하던 대로 마을이름을 대고 있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간혹 외지에서 온 손님들 가운데 종이에 새 주소를 적어 내미는 경우가 있어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다”면서 “새 주소인 도로명 가운데는 대충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생전 처음 듣는 주소가 있고, 내비게이션을 활용해 찾아가려해도 아직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고충을 말했다.
우체국 집배원들의 경우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바꾸는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바뀐 새 도로명주소보다도 종전 지번주소에 더 익숙하다.
집배원 C(49)씨는 “바뀐 새 주소를 대부분 외웠다고 자신하고는 있지만 헷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옛 주소로 된 우편물과 소포 등을 배달할 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차라리 옛 지번주소 된 우편물이 더 반갑다”면서 “잘 생각나지 않는 도로명주소는 다시 옛 지번주소로 바꿔 위치가 어딘지 확인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국민 대다수가 익숙해져야할 문제인 점에서 혼란과 어려움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택배회사들의 고충은 더 심각하다. 송장에 적힌 주소 대부분이 아직도 옛 지번주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체국 등 관공서의 경우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전환해주는 소프트웨어가 구비되어 있지만 택배회사들은 그렇지가 않다. 이에 따라 안전행정부가 바뀐 주소지를 검색할 수 있는 ‘주소 찾아’앱(애플리케이션)을 무료로 배포했지만 이 역시 활용하는데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택배회사를 운영하는 L(57)씨는 “도시에 사는 자녀 등 친인척들에게 농산물을 보내는 경우 대부분 옛 주소를 그대로 말한다. 일일이 새 도로명주소로 바꿔야하기 때문에 일이 많아졌다”면서 “거꾸로 택배를 배달하는 경우 도로명주소가 낯설고 어려워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새해 들어 부음, 결혼 등 애경사를 치르게 된 주민들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부고나 청첩장에 빤히 알고 있는 마을이름의 옛 주소 대신 낯설기 짝이 없는 도로명주소를 일일이 찾아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민 L(61)씨는 “자식 결혼을 알리기 위해 청첩장을 보내는데 그동안 보관해온,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주소록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일이 바뀐 도로명주소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옆 동네 사는 친구 주소도 도무지 기억하기 어렵게 바뀌어버렸다”면서 “공공기관을 상대할 때나 사용하는 주소이려니 해서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당해보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도로명주소 사용과 함께 종전에 써오던 고유의 마을이름이 없어지고, 덩달아 공동체문화까지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더욱 현실이 되고 있다.
실제로 도로명주소 전면사용으로 영암지역 모든 새 주소에서는 면단위까지만 표시되고 마을이름은 완전히 사라졌다. 실례로 2,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군서면 구림마을은 군서면 고산길, 구림로, 도갑사로, 돌정고개길, 왕인로, 학암길 등으로 나눠졌다.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주소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도로명주소 시행 전면중단과 보완책 마련을 촉구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국지명학회 회장인 손희하 전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도로명주소는 헌법 제69조 대통령의 민족문화 창달 의무와 제9조 국가의 전통문화보존 의무에 위배될 뿐 아니라 제10조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문화향유권도 침해한다”면서 “도로명주소 시행을 전면 중단하고 지명과 문화유산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보완책을 마련한 뒤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 일각에서는 도시지역에서처럼 새 주소 다음에 괄호로 기존 마을이름을 병행해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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