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면서 주민들은 4년마다 한 번씩 자신들 손으로 단체장과 의원을 뽑는다. 선거인 이상 대립은 필수적인 일이라고 하더라도 후유증은 그 이상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를 따라 갈라선 대립각은 심지어 고향을 등지는 이들까지 만들어낸다. 비단 지역사회 뿐 아니다. 공직사회 내부는 물론 건전한 시민사회단체의 존립에까지도 영향을 미쳐 특히 지역사회에는 소위 ‘관변단체’만 양산해낸다.
실제로 영암지역사회에서도 선거는 지난 4년 동안 당한 ‘압박과 설움’(?)을 씻어낼 기회로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신이 민 후보자가 낙선한 뒤 4년 동안 그야말로 와신상담(臥薪嘗膽)한다. 영업활동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줘 생계에 지장을 받았다고 하소연하는 이들까지 생겨난다. 지난 6·4 지방선거가 끝나고서는 아예 영업장을 다른 지역으로 옮긴이도 있다. 앞으로 4년을 절치부심하느니 다른 곳에서 영업활동을 새로 시작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에서다.
축제는 못될지언정 화합의 한마당이 되어야할 선거의 뒤끝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당선되면 군수직을 마치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생사여탈권까지 쥔 것처럼 휘두르는 ‘제왕적 단체장’이 가장 큰 원인이다. 감사청구권이나 주민소환제 등 주민들이 단체장들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 구체적인 행사에는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지방의회는 집행부와 한통속 내지는 거수기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 힘입어 군수는 공직인사와 예산집행 등 군정의 모든 권한을 쥔다. 자연스럽게 각종 공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군청 각 실·과·소나 읍·면에서 사용하는 복사용지 등 사무용품의 납품업체까지 바뀌는 계기가 된다. 당연히 선거결과 당선자의 편에 섰던 이들이 승자가 되어 점령군처럼 대부분의 이익을 독식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4년 뒤 선거 때 악순환 된다는 사실이요, 그럴 때마다 지역사회는 ‘내편네편’으로 갈려 더욱 황폐화로 치닫는다는 점이다.
당선된 단체장 스스로의 화합과 통합을 위한 노력으로 선거 뒤 빠른 기간 내에 주민들을 다시 하나로 묶어내는 역량을 발휘한 지자체들도 많다. 그러나 영암지역에서 이는 지금도 여전히 기대난망이다. 결국 민선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제왕적 단체장에 대한 제도적 견제장치의 강화가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주민소환제 같은 주민들의 직접적 견제장치의 보완도 필수적이고, 더 나아가 지방의회의 역할강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방의회의 구성과 역할 수행이 절대 필요하다.
■ 成年에 걸 맞는 지방의회 위상도 중요
지방의회가 의결권, 조례제정권(입법권), 예산 및 결산심의권, 감사권 등 주어진 권한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단체장의 전횡을 막는 한축이 무너져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앞서 지적했듯이 영암군의회는 주민들의 직접 선출로 출범한 24년 동안 주어진 입법권에 따라 의원들이 발의한 안건은 고작 97건이었다. 한 해 평균 4건이다. 단 한건의 의원 입법이 없는 해도 태반이었다. 의원들 대다수가 주민들의 생활자치 현장에 별 관심이 없었음이다.
심지어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인 예산 및 결산심의권이나 감사권을 제대로 활용했느냐도 부정적이다. 조례나 일반안건 처리 때처럼 거수기 역할에 충실했다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다.
지방의회가 제대로 가동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행부와의 결탁(?)을 초래하는 연결고리를 끊는 일이 시급하다. 이는 이른바 ‘의원사업비’ 문제로, 한해 예산안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이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의원 스스로는 주민들과의 사이에서 민원해결사 역할만을 하게 될 것이고, 집행부는 이를 빌미로 의회를 조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쟁점이 되어온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도 필요해 보인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핵심요소라는 점에서 소위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지방자치에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공천제 폐지가 끊임없이 주장되고 있는 것은 폐단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소위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된 상태에서 지방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주민들이 아니라 소속 정당이 더 중요하다. 임기 중 지역구 주민들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민의를 대변하는 일에 충실하기보다는, 선거 때 잠깐 소속 정당의 공천에 사활을 건다. 이런 구도에서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지방의회의 ‘역할론’ 은 그저 허울일 뿐이다.
■ 주권자들의 주인의식 회복 절실
행정조직의 개편도 성년을 맞은 지방자치제도의 개선과제로 거론된다. 정부는 실제로 올해 경기도 시흥시와 군포시에 책임 읍·면·동제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2개 이상의 읍·면·동을 묶어, 그 가운데 대표 읍·면·동에 더 큰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제도다. 본래 기능에 기초자자체의 주민편의제공기능까지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즉 주민들이 한 곳에서 한 번에 인허가나 안전, 복지 관련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행정의 비효율과 중층구조를 없애는 효과를 낳고 있다.
그런가하면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지난해 말 수립한 지방자치발전종합계획 세부시행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특별시와 광역시 소속 자치구·군의 의회 폐지와 서울시를 제외한 구청장 및 군수 임명제 전환 등에 대해서는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후속조치를 만들고, 세부방안을 보완해 2017년께 개편방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행정조직의 개편에 대해서는 그것이 비록 필요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지방자치라는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즉 지난 20년 동안 지방자치의 어두운 면만을 근거로 자치권을 더욱 축소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서는 민주주의의 후퇴일 뿐이다. 이 보다는 행정조직을 변화의 추세에 맞게 개편해나가되 ‘자치조직권’과 ‘자주재정권’으로 요약되는 자치권을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방자치가 이제 성년을 맞은 만큼 지역민들의 주인의식 회복은 다른 어떤 변수보다도 소중하다 할 것이다. 4년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대립과 갈등의 악순환에 체념하거나 순응할 일이 아니라 끊고 나서야 한다. 지방의원에게 저온저장고를 부탁할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도록 심부름을 시켜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평가해야 한다.
건전한 사회단체 육성도 필요하다. 권력에 맞서기 위해 급조한 유령 사회단체가 판치거나 관변단체만 즐비해서는 그 지역사회가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성년의 지방자치가 아름답게 꽃피우는데는 보다 많은 깨어있는 지역민과 그들이 만든 시민사회단체가 그 자양분이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