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사과와 빨강 사과 중 어느 게 더 맛이 있습니까?”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게 다르겠지요. 호물호물 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붉은 사과를 좋아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파란 사과를 좋아하고…”“하루에 얼마나 파십니까?”
“날마다 다릅네다. 수요가 많으면 많이 팔고, 적으면 적게 팔지요.”
그러고 보니 물으나마나한 것을 물어본 셈이 되었다. 아주머니 말솜씨가 수준 이상이다. 사과 하나 사려고 달러를 내미니 북한 돈 아니면 받지 않는단다. 노점상에선 달라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금시 잊어먹었다. <사진7>
9년 전 평양에 왔을 때는 이런 노점상을 볼 수가 없었다. 몇 년 전부터 노점상이 많아졌는데 국가의 허락을 얻어 장사를 하고 이윤의 일부는 정부에 바친다고 했다.
북한에 시장경제가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 90년대 후반 이후 장마장 형태의 시장이 조성되었다고 하니 지금쯤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은 1982년 ‘계획경제를 주로 하고 시장의 조절을 부수적으로 한다’는 정도의 시장 개념을 처음으로 경제정책에 도입했다. 그리고 10년 만인 1992년 장쩌민 전 주석이 14차 당대회에서 “중국 경제체제 개혁의 목표는 사회주의시장경제에 있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 후 20여 년 간 중국이 초고도 성장을 이어가며 마침내 미국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예는 쿠바에서도 볼 수 있다. 쿠바는 2010년 9월 <경제 사회개혁>을 선언했다. 식당, 택시 등, 178개 업종에 대해 자영업을 허가했다. 그 결과 각 도시에 수많은 자영업이 생겨나 시장경제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북한도 그런 모습을 닮아가는 것일까. 지켜볼 일이다.
연극공연을 보다
김참사가 연극표를 사왔다. 26달러다. 현지인은 훨씬 싼 값에 볼 수 있다고 한다. 거의 모든 요금체계가 현지인과 외국인과는 현저하게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식당에서도 같은 음식인데 내국인과 외국인이 내는 음식 값이 크게 다르단다.
국립 연극극장 앞에 많은 관람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잘 지은 대리석 건물이다. 2010년도에 김일성 주석 100세를 기념하기 위해 군인들이 4개월에 완공했다고 김참사가 설명을 한다. 어제 공항에서 보았던 ‘조선속도’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늘 공연 예정인 ‘딸에게서 온 편지’ 포스터가 보인다.
관람석이 300석쯤 되어 보인다. 자리를 찾아가 앉았는데 바로 뒷자리에 어린이가 할머니와 함께 앉아 있다. 귀여워서 말을 걸었다. 다섯 살 김명호라고 한다,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하니 아이의 어머니가 손으로 카메라를 막는다. 그 때 할머니가 “야아, 곱다고 기러시는데 사진 찍게 하라우” 하자, 못이긴 척 손을 내린다.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손자 3대가 연극을 보러 왔는가 보다. 손자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길 속에 사랑이 가득하다.<사진8>
객석을 둘러보니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엄마. 친구들과 함께 온 학생들. 군인들도 군데군데 보인다. 내 옆에 앉은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만화책을 보고 있다. 만화를 좀 보자고 하여 들쳐 보았는데, 여러 사람 손을 거쳐왔는지 많이 낡았다. 어릴 적, 저렇게 책장이 너덜너덜 하도록 만화책을 돌려보던 기억이 새롭다. 평양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황해북도 린산군 린산 고급중학교 5학년이란다. 나이는 열다섯, 5일 전 평양에 왔다고 한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가 무대 조명을 받으며 낭낭한 목소리로 얘기를 한다. 시작 멘트다. “위대하신 김일성 주석님께서는 연극을 보러 갈 때는 옷을 단정히 입고 관람질서를 자각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연극은 배워야만 한다, 는 주제로 김일성 주석님께서 제작하여 올렸던, 60년 전의 연극 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가르침을 주는 연극입니다.”라고 소개를 한다. 연극이 시작되었다.
아는 게 힘이다는 계몽적인 내용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무대 장치도 손색이 없다. 이곳 배우들은 모두가 국가에서 지급하는 보수를 받아 생활하며 일반인과 별 차이 없는 평범한 생활을 한다고 했다. 연기자로서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서방 세계의 배우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연극이 끝나 밖에 나오니 수많은 인파가 길가에 대기하고 있다. 아시안 게임 출전 선수를 환영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손에 손에 꽃이 들려 있고, 드문드문 팻말을 들고 있다. “어머니 조국의 축하의 인사를!”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10여분을 기다리니 선수를 태운 무개차가 나타난다. 대형 무개차 앞부분은 꽃으로 장식하고 몸통은 국기를 덮었다. 목에 화환을 건 선수들이 타고 있다. 사람들이 꽃이나 국기를 흔들면서 열광적으로 환영한다. 보도진이 선수단을 따라가며 중개를 하고 호위하는 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간다.
남한에서도 외국에 나간 선수들을 환영하기 위해, 혹은 귀국하는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던 시절이 있었다. 시청 앞 높은 빌딩에서 색종이를 뿌려분위기를 고조시키던 풍경도 떠오른다. <사진9>
선수단이 지나가자 삼삼오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이 일요일인데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느냐고 김참사에게 묻자, 조직을 통해 동원된다고 설명한다. 각 지역, 학교, 직장 단위로 구성된 조직망을 통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직에 구속되어 산다는 건 자유를 제약 당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안내원에게 물었다. “개인은 근본적으로 조직을 벗어나서 살 수 없는 것, 우리나라는 잘못될 자유가 없는 곳이다”란 답변이 돌아온다. 조직에서 안전하고 바르게 인도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성장기에 따라 소년단, 청년단, 조선공산당, 크게 셋으로 구분 된다고 한다. 소년단은 초등학교에서 시작되며, 잘하는 아이부터 차근차근 선발하여 경쟁심을 유발시킨다고 했다.
호텔 구내식당에 들러서 저녁을 먹었다. 아침 식사는 무료지만 점심이나 저녁은 밥값을 내야한다. 곱들장찌게와 두부 한 모를 주문했다. 밥과 김치, 오이무침이 반찬으로 나왔다. 술이 빠질 수 있나. 대동강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모두 여섯 달러다.
팁을 놓을 필요가 없다고 해서 그냥 나오려니 좀 어색하다. 습관이란 게 무섭다. 아침 일찍부터 해질녘까지 꽉 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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