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쌈하다 늙었제 밤에도 낮에도 베만 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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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쌈하다 늙었제 밤에도 낮에도 베만 짰어"

군서면 양장리 박 삼 두씨(94세)

"베짜서 폴아 이 집 샀어...
이런저런 말 묻지 말고
아들.며느리 꽝꽝하게나 해쥬쇼"
군서면 양장리 양장마을 박삼두(94) 할머니는 열 아홉살 나 시집올때 “가매 타고 배 타고 물건너 왔다”고 했다.

고향이 서호면 금강리다. 당시 군서 양장과 서호 금강 사이에는 영산강이 흐르고 양장 뒷편은 바다였으니 뱃길이 유일한 교통수단 이었단다.

지금은 모두 간척지로 변해버린 땅. 친정 집에 가고 싶어도 강이 가로막혀 쉽게 가지 못했다고 한다.

강을 바라보면 어찌그리도 멀게만 느껴지는 길이었는지…. 박 할머니는 “하기사 딸 자석(자식)은 시집 보내믄 너므집 자석인디…”라며 그때 친정에 못가던 안타까운 심정을 스스로 위로하는 듯 했다. 친정 어머니 아버지 다 돌아가신 후에야 제사 지내러 잦은 걸음 했다니.

박 할머니는 4남매 중 셋째. 그래서 석 삼(三)자, 콩 두(豆)자 삼두(三豆)란다. 그래서 ‘콩이 서말’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단다.

김해김씨 사군파 잘사는 집안으로 시집왔다. ‘콩 서말’같은 복덩이가 시집왔다. 할아버지는 마을 앞 뒤로 바다였던지라 배타고 고기도 잡고 농사일도 했다.

여자들이 갯벌에서 기(게)나 조개를 잡았지만, 박 할머니는 먹고 살만한 집안이어서 어르신들이 바다에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질쌈(길쌈) 허다가 늙었제… 밤에도 짜고 낮에도 짜고 베 많이 짰어, 장에 나가 베 폴아서(팔아서) 이집 샀소”

할머니는 길쌈과 밭 메는 일로 세월 보냈다고. 아들 두 형제를 낳았다. 막내 딸을 하나 낳았지만 세살 때 보냈다. 할아버니가 세상을 떠나신 때는 까마득한 옛날이다. 가신지는 50여년이 지났으니… “먼 기억이 나? 일찍도 가버리셨는디”

“애기를 미영띠(포대기)로 시렁까래에 묶어놓고 밭 메러 댕겼어” “시때(새때) 젖먹이러 오먼 애기가 요리보고 저리보고 울고불고 난리여”

큰 아들 김도호(74)씨, 둘째 아들 김선호(61)씨가 있다. 큰 아들 김도호씨가 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며 모셔 효자로 소문났다. 김도호씨는 올해 4월 22일 군서면민의 날 행사에서 효자상을 받았다.

5년전부터 할머니를 성심으로 모시던 큰 며느리(이성님·64)가 치매를 앓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와 부인을 함께 돌봐야 하는 김도호씨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 할머니와 며느리가 최근 노인요양보험 급여 2급과 3급 판정을 받았다.

박 할머니는 허리가 많이 아파 기동을 못하시지만 정신만은 또렸또렷 하시다. 장수하신 비결을 여쭈니 “아따 벌걸 다 물었쌌네!”라고 야단치신다. “평상시 소식하고 가리는 음식이 없다”고 큰 아들이 일러준다.

“왜정 때, 6·25 때, 파란만장한 시상(세상)을 겪음서도 못헌것 없이 만족허고 살았응께 됐제 먼 소원 있겄오” “여말이요! 이런말 저런말 묻지말고 우리 아들 며느리 꽝꽝하게(건강하고 잘살게)나 해주쇼, 그것이 질로(제일) 소원이여”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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