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열과 떠나는 북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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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정찬열과 떠나는 북한여행

북한 방문 13일째 이야기<21>

김 참사가 날이 어두워졌으니 그냥 가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묻는다. 생가를 들리지 말고 그냥 가자는 얘기다. 다시 오기 어려운 길이니 생가를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았지만,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방문하지 못할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쉽다. “이봐, 해봤어?” “길이 없으면 찾고, 찾아도 없으면 닦아나가면 된다” 그 분의 말은 쉽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쌀가게 주인에서 시작하여, 자전거 수리공장을 발판으로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사람.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들이대 해외차관을 얻어와 현대중공업을 키운 분.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통과해 대북사업을 하는 등 그의 도전정신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 분의 생가 방문을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다시 출발. 날이 저물어간다. 제법 어두워진 밭둑에서 20여명 농부들이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있는 모습이 차창을 통해 보인다. 이 시간에 들판에서 뭘 하고 있을까. 조합원들이 꾸중을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작업을 지시하거나 오늘 일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밤 8시경 원산 동명호텔에 도착했다. 전기 사정이 긴박하여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으니 이해를 바란다고 종업원이 얘기한다.
낮에 먹었던 회가 잘못 되었던지, 체했는지 가슴이 답답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져간 소화제를 먹었지만 효과가 없다. 이 상황에서 아파 누우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더 컸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아침이 밝았다.
세포등판 가는 길
아침 6시경, 속이 좋지 않아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는 얘기를 듣고 김 참사가 내 방에 건너왔다. 어제 추운데 앉아 점심을 먹어 체한 모양이라며 마사지를 해준다.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전문가에게 배웠다고 한다. 속이 한결 편하다.
오늘은 오전에 고산과 세포등판을 다녀 온 다음, 오후에 송도원 야영장을 둘러보고 나서 함흥에 도착해야 한다. 빡빡한 일정이다.
식당 창가에 앉으니 원산 앞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종업원에게 물으니 저쪽 길게 보이는 곳이 명사십리가 있는 갈마반도이며 등대가 있는 작은 섬은 장덕섬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TV에서는 ‘우리 김정은 장군’ ‘그날의 15분’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 등의 노래가 자막과 함께 흘러나오고 있다. 아침은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으로 때웠다.
아침 산책 겸 원산항 주변을 둘러보았다. 배 몇 척이 한가하게 떠 있을 뿐, 뱃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인데 시내도 사람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숙소에 돌아오니 운전사 방 동무가 차를 닦고 있다. 여관 앞뜰 감나무에 감이 빨갛게 익었다.
고산을 향해 출발. 금강산 가는 길로 10여분쯤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니 신작로가 시작된다. 우둘투둘한 길을 먼지를 일으키며 달린다.
날씨가 흐리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가랑비다. 30분정도 달렸을까. 갑자기 길이 막힌다. 주민들이 신작로 보수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차를 되돌려 다른 길로 가야 한단다. ‘고산과수농지건설전투장’이라는 표지판이 서있다. 고산 과수농장 지역인데 3천정보가 넘는다고 한다. 오는 길에 들리기로 했다.
차창을 통해 마을 풍경이 스친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농가 지붕 위에 콩대를 말리고 있다. 야트막한 뒷산은 개간하여 층층이 밭을 만들었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난 들판은 한가하다.
빨강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군인들이 도로 포장공사를 하고 있다. 북한은 저렇게 군인들이 평시에는 산업전선에 동원되느냐고 김 참사에게 물었더니, 필요하다면 언제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군인들이 고생이 많다고 하니, 누구나 다 병사 시절을 거친다고 말을 받는다.
비가 그쳤다. ‘풍산’이 들어간 간판이 여기저기 보인다. 풍산읍인 모양이다. 진도를 말하면 진돗개가 떠오르듯, 풍산 하면 풍산개가 생각난다. 풍산개 세 마리면 호랑이도 잡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사냥개로 유명하다는 얘기일 터이다. 옛날 이런 산악지대에서 개를 앞세워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던 모양이다. 당연히 좋은 사냥개가 필요했을 법하다. 그 좋은 혈통을 계속 이어와 오늘날 풍산개가 된 게 아닐까 싶다.
목탄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진돗개를 길렀다. 녀석은 저녁이 되면 토방 앞을 떠나지 않았다. 눈보라 치는 겨울, 새벽에 일어나 보면 목덜미에 눈이 수복이 쌓인 채로 방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진돗개를 구해서 길렀다. 두더지가 뒷마당을 헤집어 놓아 애를 먹던 어느 아침, 진돌이가 두더지를 잡아 뒷문 앞에 물어다 놓았다. 어느 날은 새를 낚아채서 잡아놓기도 했다. 주인에 대한 충성과 사냥 감각은 비할 수 없을 만큼 탁월했다.
소를 두 마리씩 묶어, 세 쌍이 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쟁기질을 하다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모양이다. 남쪽은 쟁기로 논밭을 갈 때면 소 한 마리에 쟁기를 채워 부리는데, 북쪽은 두 마리를 함께 묶어 쟁기질을 하는 모양이다. 지나치고 나서야 사진을 한 장 찍어두면 좋았을 걸 후회가 되었다.
반대편 쪽에서 오던 버스 한 대가 스쳐 지나간다. <원산 - 관산> 행선지가 앞 유리창에 붙어있다. 원산과 관산 사이를 운행하는 노선버스인 모양이다. 평양 아닌 지역에서 노선버스는 처음 본다. 차에 탄 사람은 많지 않다. 열 명 쯤이나 될까
밭에 배추가 싱싱하게 여물었다. 이곳에서 김장은 공동으로 하는지 세대별로 하는지를 김 참사에게 물었다. 배추와 양념을 나누어주면 가정마다 따로 김치를 담근다고 한다. 공동으로 김치를 담가 나누어 먹는 게 시간도 절약하고 효과적인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각 가정마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맛이 있을 텐데 거기에 맞춰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좋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막대기로 콩 타작을 하고 있다. 남한의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남쪽에서도 이맘때쯤이면 들에서 콩을 걷어 들여 햇빛 좋은 날 마당에 널어놓은 다음, 바삭 하게 마르면 저렇게 막대기나 도리깨로 콩 타작을 했다. 콩은 사방으로 튀어 달아났다. 마루 밑이나 고무신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수채 구멍으로 숨어버리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눈여겨 본 시인이 시 한 편을 썼다. 김용택 시인이 쓴 <콩, 너는 죽었다>란 시다. ‘콩타작을 하였다 /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 콩 잡으로 가는데 / 어, 어, 저 콩 좀 봐라 / 쥐구멍으로 쏙 들어 가네 / / 콩, 너는 죽었다.’ 그랬다. 사면팔방으로 튀어 달아난 콩을 쓸어 모아 놓으면 마당 가운데 수북이 쌓였다. 그 콩이 콩나물도 되고 콩가루도 되고, 우리들의 공책도 연필도 되었다. 저기 저렇게 콩을 두드리는 아주머니도 그런 오지게 좋은 순간들을 생각하며 콩 타작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방송선전 차 한 대가 지나간다. 차에 마이크가 설치되어있다. 이곳저곳 다니며 공지사항을 알려주는 차인 모양이다.
세계 제일 목장을 꿈꾸는 세포등판
세포등판이 멀지 않았다고 운전사 방동무가 말한다. 세포등판은 휴전선에서 직선거리로 12㎞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남쪽의 철원지방과 가까운 곳이다.
고원지대라서 눈과 비가 많고 바람이 워낙 심하게 부는 곳이라서 세포, 즉 눈포, 비포, 바람포, 세 가지 포탄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세포군청에 들렀다. 트럭 한 대가 마당에 서 있고, 지붕 위에는 농산물을 말리고 있다. 김 참사가 안에 들어간 사이 부근을 둘러보았다. 읍내거리는 비교적 조용하다. 자동차는 보이지 않고 3층 아파트가 길 따라 늘어서있다.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를 포함한 주민 몇 명이 곡식자루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외지사람인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건설지휘본부 설계책임자가 차에 동승하고 안내를 시작한다. 정혁삼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풀밭이 조성된 언덕에 올라갔다. 사방의 경치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세포등판은 강원도 평강군, 이천군, 세포군 세 곳에 걸친 넓은 지역인데, 5만 정보의 땅에 대규모 목축장을 건설 중이라고, 개요를 얘기해준다. 해발 620m인 이곳은 바람, 비, 눈이 많고 땅이 척박하여 풀이 자라기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지만, 토질을 개선하고 이곳에 알맞은 품질의 풀을 심어 4만 정보의 자연 풀판과 1만 정보의 인공풀판을 조성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만든 풀판에 비육우, 젖소, 염소, 등의 가축을 길러 세계 제일의 축산 농장을 건설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란다. 인공풀판은 건초를 만들어 겨울철 풀이 없는 동안 가축을 먹일 사료를 준비하는 것이고, 자연풀판은 풀이 자라는 계절에 방목할 것이라고 부연 설명한다.
현재 세포군 인구는 3만정도인데 2만여명의 돌격대원들이 지원하여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돌격대가 무얼 의미하느냐고 물었다. 각 지방, 직장 단위로 이 일에 자원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2012년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2015년 10월 10일 이전에 마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사업이 완공되면 20만마리 이상의 가축을 길러 고기와 우유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 각종 축산가공제품까지를 이곳에서 생산해낼 것이라고 한다. 현재 가축은 몇 마리정도 기르고 있냐고 물었다. 양이 1만마리 정도, 소가 1천마리정도라고 한다. 축산연구소, 축사, 종축장, 종업원 살림집, 학교를 포함한 후생시설과 지원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제일 큰 목장은 뉴질랜드에 있는 마운트 펨버 스테이션(Mt, Pember Station) 목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규모가 272,420,000㎡(824,070,500평)로 세포등판 490,000,000㎡(148,225,000평)의 반 정도란다. 세포등판 목장이 완공되면 명실상부한 세계 제일 목장이 된다. 남한의 대관령 삼양목장이 6백만평으로 동양 최대 규모인데, 그것의 25배 넓이다.
대관령 삼양목장에 연평균 50만명의 관광객이 온다고 한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주위의 금강산 등과 연계한 관광단지로 개발을 해도 좋겠다.
‘성산원’이란 건물로 안내한다. 이발소와 이용소, 그리고 목욕탕이 있는 건물이다. 새 의자가 들어와 있는데 아직 개소식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목탄차를 보다
안내자의 얘기를 듣고 있는데 저만치 신작로에 트럭이 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목탄차다. 얘기도 듣고 책에서도 읽어보았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저렇게 나무를 태워 자동차를 움직일 수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식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목탄차를 보면서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났다. 내가 중학교 시절, 시골 국민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병으로 눕게 되었다. 병원비며 약값이며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새마을 작업장에 나가겠다고 나섰다. 채석장에서 돌을 담아 머리에 이고 신작로에 나르는 일이었는데, 하루 일당 밀가루 한 포대를 준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이 “사모님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려느냐”고 하자, 젊은 어머니는 “행팬 따라 살아야지, 사모님이 뭐 밥 먹여주나요”하며 여러 날을 공사판에 나가 돌을 나르며 밀가루를 받아 오셨다. 그런 억척스런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우리 일곱 남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이따금 돌이켜보곤 한다.
개인이건 국가건 스스로 살 길을 찾으면 어떻게든 길이 열리기 마련이다. 목탄차 얘기는 여러 번 들었다. 1993년 출판된 조광동씨가 쓴 북한 방문기에 “농촌 길을 갈 때 보기 드문 달구지를 본다든지 자동차가 대용연류를 썼기 때문에 높은 데 올라갈 때 힘들어 한다든지 이런 사소한 것을 과대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라는 북한 관료의 발언이 소개 되었고, 근래 출판된 신은미씨의 책에도 그 얘기가 나와 있다. 그 외 몇 분으로부터도 들은 적이 있다.
성산고급중고등학교 방문
세포등판에 있는 성산고급중고등학교를 방문했다. 학교를 방문하고 싶다는 내 의견을 수용하여 이 학교를 찾아보도록 주선한 모양이다. 양쪽 벽에 크게 쓴,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모두다 최우등생이 되자’는 글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본관 앞에 “우리는 하나를 배워도 조선혁명을 위하여 써 먹을 수 있는 산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 김정일”이라는 글이 적힌 석판이 서있다.
학교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신재선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50대 후반 정도의 영락없는 교육자 모습이다. 소학교, 초급중, 고급 중학을 함께 가르치는 학교라고 했다. 학급당 인원이 몇 명쯤이냐고 물으니 15명부터 20명 사이라고 한다. 교육현장을 보고 싶다고 하니, 소학교 2학년 교실로 안내한다. 여교사가 담임으로 산수 과목을 수업중이다.
교실을 살펴보았다. 책상이나 의자가 새것이다. 난방장치도 설치되어있다. 그러고 보니 교실도 새로 지은 건물인 성 싶다. 이 지역에 축산기지를 건설하면서 세운 학교인 모양이다.
교사 탁자위에 소학교 2학년용 산수 교과서가 펼쳐있다. 잠깐 훑어보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도 저만한 나이에 이런 정도의 산수 문제를 풀었는지 모르겠다.
교사용 지도서도 보인다. 탁자 귀퉁이에 선생님 손전화가 놓여있다. 지방에서 손 전화를 본 것은 처음이다. 책상 위에 붉은 색과 푸른 색 수성 펜이 보인다. 이제 북한에서도 더 이상 백묵을 쓰는 칠판은 사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수업 중에도 칠판 닦기를 털어가며 공부를 하던 때가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니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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