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열과 떠나는 북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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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정찬열과 떠나는 북한여행

북한 방문 16일째 이야기<26>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발원지가 현재 장충성당 자리란다"
동명왕능 기단의 한 변 길이가 31ml 봉분의 높이는 11.5ml란다.
광주행 완행버스를 탔다. 주말 오후라 자취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올망졸망 짐도 많았다. 운전사 옆자리 엔진 위의 네모진 공간에 김치단지와 식량포대를 올려놓았다. 그곳은 짐을 싣는 곳이었다. 엔진이 달궈지면 따끈따끈해져 추운 날이면 사람들이 앉고 싶어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버스는 출발부터 만원이었다. 그렇지만 신작로에서 사람들이 손을 들 때마다 계속 태웠다. 가다 서고 가다 서고 손님은 점점 많아져갔고, 내 짐 위로 다른 짐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차장은 사람을 계속 밀어 넣었다. 문을 닫지 못한 채 차장이 아슬아슬하게 창문에 매달려 가기도 했다. 사람 사이에 끼어 숨쉬기가 거북했지만, 운전사가 급정거를 하고 사람이 한 번 앞뒤로 쏠리고 나면 숨통이 좀 트이곤 했다.
자갈 깔린 신작로를 따라 버스가 지나가면 바퀴에 치인 자갈이 멀리 튕겨 나가곤 했다. 움푹 팬 길을 차가 속력을 내고 지날 때면 버스가 천장 높게 뛰었다. 사람도 짐도 널뛰듯 함께 뛰었다. 그럴 때면 보자기에 싸서 선반에 올려놓은 암탉까지 꼬꼬댁 꼬꼬댁 소리를 질러댔다. "워~매, 간 떨어지것네이, 쪼깐 천천히 갑시다 잉.” 누군가 소리를 질렀지만 운전수는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차 안은 땀 냄새로 가득했다. 에어컨도 없는 완행버스라 이런저런 퀴퀴한 냄새도 함께 섞여 비위를 거슬렀다. 어떤 아주머니가 숨 막혀 죽겠다며 문 좀 열라고 해서 창문을 열었는데, 버스가 서면 창문을 통해 먼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먼지 때문에 열렸던 창문이 다시 닫혔다.
신작로를 걸어가던 행인들은 버스가 지나면서 만든 먼지를 뒤집어쓰고 먼지 구름이 지나갈 때까지 한참 동안 길가에 몸을 웅크리고 서 있었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갓 쓴 할아버지가 먼지를 피해 저만치 논둑으로 달아나며 손을 휘젓는 모습이 뿌연 차창을 통해 희미하게 보였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어디선가 김치찌개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오뉴월 만원 버스에 번져가는 김치 냄새로 사람들은 코를 막으며 무어라 수근 거렸다.
세 시간쯤 걸려 버스는 광주에 도착했다. 상점들이 등을 켜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짐을 하나씩 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깨진 김치단지에서 흐른 김칫국물이 자취생들의 쌀자루를 차례로 적셔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자동차 엔진에 달궈진 짐칸 위에서 모락모락 김이 났다. 맨 밑에 있는 깨진 김치단지가 얼핏 보였다. 운전사가 주인이 누구냐고 큰 소리로 물었다. 여러 명의 남녀 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짐을 들추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 김치단지였다.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그냥 놔두고 가버리고 싶은 생각이 불쑥 일었다. 순간,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깨진 김치단지를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김치 국물로 범벅된 쌀포대 주인들도 말없이 자기 것을 챙겼다.
짐이 많은 아이는 지게꾼을 불러 집으로 가고, 다른 아이들은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 나는 시골집에서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자취하는 집까지 꽤 먼 길을 식량자루를 짊어지고 걸어서 갔다. 김치 냄새 때문에 시내버스를 타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며칠 동안 왜간장에 마가린을 비벼 먹거나, 멀건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에 들어가 보니 누군가 꽤 많은 김치를 가져다 놓았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이따금 자취생 부엌을 점검(?)해 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뿐만 아니라 김치단지 깨진 얘기를 전해들은 친구들이 반찬을 가져와 주어서 그달은 다른 때보다 더 풍성한 밥상을 차려 먹었다."

평양 노래방에 울려 퍼진 '진도아리랑'
참 오래 전 이야기가 되었다.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왼쪽 산에 ‘애국림’이라고 돌로 박아 만든 하얀 글씨가 보인다. 해외동포들이 식목해놓은 산이라고 김 참사가 설명해준다. 미국에서도 북한에 나무보내기 운동을 했는데, 보내준 나무를 저 산에 심었던 모양이다.
검문소다. 군인이 검문을 한다. 평양시와 평안북도 경계라고 한다. 차 안을 들여다보는 눈빛이 매섭다. 평소 경험하지 않는 일을 체험할 때 특별한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패인 도로를 고치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평양에 도착했다. 오늘 저녁은 노래방이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자고 한다.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란다.
매운탕을 주문했다. 맥주 세 병,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밥이 나오고 술이 나온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노래가 시작된다.
도우미 아가씨가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래를 한 곡 부르고 난 다음, 김 참사와 운전사 방 동무가 돌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지난번 묘향산에서도 들어봤지만 이 사람들의 노래솜씨가 만만치 않다. 노래 곡목집을 가져온다. 책을 들쳐보니 아는 노래가 별로 없다. 반갑습니다, 심장 속에 남는 사람, 등 대부분 북한 노래이고, 남한 노래는 황성옛터, 신라의 달밤, 하숙생 정도다. 하숙생을 골라 한 곡조 부른 다음,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노래방 기기는 성능이 좋아 방을 쩡쩡 울린다. 조명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스무 살쯤 되었을까, 유니폼을 입은 도우미 아가씨 두 명이 시중을 든다. 노래솜씨도 일품이다.
9년 전에 왔을 때도 노래방에 들렀는데, 그때 안내원이 “노래방은 외국에서 온 방문객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장소라고” 설명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내 곳곳에 노래방이 생겨났고, 식당과 노래방이 함께 있는 곳이 많아 현지인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단, 고려호텔 노래방 등 외화만 받는 곳은 현실적으로 내국인은 드나들 수가 없다고 했다.
노래방은 한국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놀이문화의 한 형태다. 한국은 물론 이곳 미국에도 한인이 밀집한 지역이면 노래방을 흔히 볼 수가 있다.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가무를 즐기는 민족성 때문이리라.
10월 18일. 하루가 저물어간다. 금년 생일은 오래 기억될 성 싶다. 아주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과 보냈으니까.
장충성당 미사에 두 번째 참석하다
장충성당 미사 모습
북한 방문 16일째. 일요일이다. 성당 미사에 참석할 계획이다. 아침 10시에 장충성당 미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지난번에는 택시를 잡느라 늦게 도착했기에 이번에는 좀 서둘렀다. 오늘 아침도 택시 잡는 일이 여전히 힘들다. 서둘러 가는데 마침 성당 가는 어느 길목이 공사 중이라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있다. 이번에도 늦겠구나 싶었는데, 김 참사가 내려서 교통순경에게 사정을 얘기하니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준다.
다행히 미사 시작 전에 성당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만났던 김철웅(프란치스코) 회장과 안내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지난 주일에는 미국에서 온 김세을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차분히 미사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본당은 좌석 2백석 정도의 규모다. 앞쪽 벽에 예수님 초상화가 걸려있다. 오른쪽에는 예수님이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그리고 왼쪽에는 성모님 사진을 걸어놓았다. 바로 밑에 성모님이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나무 조각이 놓여있고, 조각상 앞쪽에 여자 성가대원 4명이 미사포를 쓰고 앉아 있다. 하얀 제의를 입은 남자 세 명이 예수님 초상화 바로 밑에 마련된 제대 앞에 서 있다. 가운데 있는 이가 김철웅 회장이다. 그 이가 미사를 집전하는 모양이다. 제대 위 촛불이 켜졌다.
미사가 시작된다. “오늘은 연중 제29주일, 전교주일입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바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 28장 16절부터 20절’입니다.” 진행자가 미사 순서를 안내하자 신자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복음을 낭독한다.
“열한 제자는 갈릴레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복음 낭독이 끝나자 가톨릭 미사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말씀 전례가 진행된다. 우리가 평소 진행하던 미사 순서와 다르지 않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매주 같은 주제로 같은 순서에 따라 미사를 드린다고 오래 전 어떤 분에게 설명했더니, 그런 말을 처음 듣는다면서 새삼스러워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함께 바치는 ‘주기도문’을 온 신자가 큰소리로 낭송한다. 신자들이 기도문을 정확히 외우고 있고 기도를 바치는 모습이 진중하다.
강론은 오늘도 김철웅 회장이 맡고 있다. 오늘 미사 주제에 관한 얘기를 한 다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코멘트를 남긴다.
신자들의 보편 지향기도를 바치는 순서다. 각 성당에서 필요한 내용을 준비하여 바치는 시간이다. 여자 신자가 나와 기도를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날 세계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 ” 기도가 끝나자 다른 신자가 나와서 각 가정을 위한 기도를 한다. 준비된 다른 기도가 진행된다. 말하지 않는 내용까지도 포함하여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는 시간이다. 미사에 임하는 신자들의 모습들이 진지하다.
미사가 끝나고 김철웅 회장, 성가대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 회장에게 성가집을 한 권 얻을 수 있겠는가 물었다. 2005년 방북했을 때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본 다음, 목사님께 부탁하여 성가집을 가져간 적이 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잠깐 망설이더니 성가집 한 권을 챙겨 주기에 가지고 나왔다.
밖에 나와 보니 신자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오르고 있다. 신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럴 틈도 없이 버스가 출발한다. 미사가 끝난 다음 신자들이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누는 친교 시간이 이곳은 없는 모양이다.
본당과 떨어져 있는 별채는 오늘도 문을 열지 않았다. 마당 한쪽 감나무에 붉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신자들이 떠난 성당 건물이 쓸쓸해 보인다.
이곳에는 상주하는 신부가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방문하는 신부가 미사를 집전할 때만 성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2015년 12월, 한국주교단이 평양을 방문했는데 천주교 주요 대축일에 남측 사제를 장충성당에 파견하는 문제를 협의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남측 사제가 장충성당에 상주하고, 신자들 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양측이 노력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북측에서 장충성당에 ‘예비신자 교리실’이 필요하다고 하여, 남측에서 성당 개보수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고 했다. 분단 70년 만에 이루어진 이번 방문을 통해 남북화해와 협력에 새 이정표가 마련될 지도 모르겠다. 정치가 막힐 때는 종교나 체육 등, 민간 부문에서 물꼬를 튼 선례가 있었으니까.
북한을 방문하기 전, 내가 다니는 본당 수녀님을 만났다. 그녀가 당신이 소속 되어있는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발원지가 평양인데 지금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기에 주소를 받아왔다. 평양에 도착한 후 김 참사에게 그 일을 부탁했는데 그동안 행정구역이 바뀌었고 너무 오래된 일이라 확인이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 오늘 다시 김철웅 회장에게 그에 관해 물어보았는데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엉뚱한 곳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으로부터 그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다. 북한 방문을 마치고 평양 순안 공항을 출발하여 심양에 도착하던 날, 마침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재미 교포 J씨를 공항에서 만났다. 그 분은 북한 출신인데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살고 있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평양을 왕래해오고 있다고 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가톨릭 신자라고 하여 자연스럽게 장충성당 얘기가 나왔고 궁금하던 문제를 털어놓게 되었다.
내가 적어놓았던 주소를 말해주었더니, 현재 장충성당이 있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라고 한다. 본인이 사실을 확인한 다음 몇 년 전 수녀회 본부에 그 내용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한국과 온 인류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1932년 6월 27일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모리스 몬시뇰(Morris, John Edward)이 평양 영유읍 상수구리 257번지에 설립한 한국 최초의 방인(邦人) 수녀회,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의 발원지가 현 장충성당이 자리한 곳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우연히 알게 되었다.<다음호에 계속>
옥수수 베어낸 밭에 소떼를 놓아먹이고 있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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