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좋은시상 살라’던 시아버지 말 못들은척 했제
검색 입력폼
 
영암in

'가서 좋은시상 살라’던 시아버지 말 못들은척 했제

군서면 배바우(주암) 전 복 례할머니(90세

시어머니와 동병상련… 서로 의지
고부지간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고
스물 여섯(26)살에 청상과부라. 군서면 배바우(주암) 사시는 전복례(90) 할머니.


세 살 연상이던 청년 지아비 떠나보내고 아린 가슴, 눈물 숨기고 살았다.

“가서 좋은 시상 살어라”시던 시아버지 말도 못들은 척 하면서 시어머니 모시고 살았다.

휑한 가슴 채워주며 서로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은 시어머니 뿐. 작은 마누라 얻어 딴 살림 차려, 내집 드나들기를 장날 마실 나오듯 하는 시아버지.

해서 시어머니와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으로 서로 의지할 수 밖에.

“내가 하룻만 친정 집에 갔다 조금만 늦게 와도 시어머니 발이 닳았어”

사립문 앞에 서서 안절부절 며느리 오기만 기다리던 시어머니. 행여나 며느리 친정 갔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외로운 시어머니 버리고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며느리 오는 길 쳐다보며 잰 걸음 하셨을 시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전복례 할머니는 열 여섯(16) 나이에 함양박씨 종갓집으로 시집왔다. 할머니는 서호면 엄길이 고향.

할아버지는 배바우(주암)에서 집 근처 지천으로 널렸던 대나무를 베어 죽물을 만들어 파셨다. 소쿠리며 걸세바구니, 석장 등….

“시상 말 수 없고 점잖은 양반이셨제, 어머니를 극진히도 모셨어. 내가 부끄럼을 많이 타 여라서 말도 못혀보고 얼굴도 못쳐다봤네”

살아계시던 10년간 할아버지랑 알콩달콩 사는 재미 없었다. 수줍음을 잘 타셨다는 할머니는 남편보다는 시어머니께 마음 터 놓고 살았다고. 고부지간 사이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고. 서로 짠한 마음에 서로 감싸주고 의지하며 시어머니 봉양하며 사느라 세월가는 줄 몰랐단다. 그렇게 의지하던 시어머니 떠나보낸지도 30여년이다.
할머니 회갑연 때의 가족사진. 맨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전복례 할머니


그래도 딸 둘을 낳아 키웠다. 큰 딸은 일찍 떠나보냈고, 작은 딸(박행자·67·군서 동구림리)과 사우(황병학 공무원 퇴직), 외손주(황대열)가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괴기’ 사들고 자주 들여다 본다.

“딸이 사오고, 사우가 사오고, 손주가 사오고 괴기 많이 사다준께 고맙제”

“우리 딸 고상 퍽 시겼어…” 논일, 밭일, 집안일… 전 할머니는 작은 딸 고생 많이 시킨것이 못내 가슴아프신 듯 말꼬리를 흐렸다.

빛 바랜 사진들 촘촘한 가족사진첩을 넘기시던 할머니께서 눈물을 훔치셨다.

할머니 오래 건강하세요.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