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정, 지역민 보호 국가 안위 보장처 역할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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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열무정, 지역민 보호 국가 안위 보장처 역할 위해

1535년 창건…선현들의 문화유산 영구히 전승할 것"

영암 열무정 사포계, '閱武亭 顯彰文' 통해 강조
영암 열무정 사포계(공사원 황용주)는 그동안 본보에 게재해 온 '영암 射亭(열무정) 창건 및 사포계에 관한 문헌고찰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60호 사포계문서 국역을 중심으로'와 관련해 '열무정 현창문(閱武亭 顯彰文)'을 에필로그로 보내왔다.
사포계는 이 현창문에서 "열무정은 왜구들로부터 지역민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보장처 역할을 하기 위해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하던 사정으로 1535년 창건됐다"면서, "선현들의 문화유산을 영구히 후대에 전승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열무정 현창문의 전문이다.<관련기사 12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祖上傳來哲理를 터득하고 우리 고유 傳統의 유·무형 文化遺産을 發掘保存하고 振作하여 後世에 傳承케 함은 民族的 次元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靈巖에서 태어나고 생을 이 고장에서 享有하는 우리 世代에게 주어진 마땅한 責務이며 道理일 것이다.
우리 고장은 많은 儒·佛 文化遺産과 民俗文化를 간직하였을 것임에도 現今에 이렇다 할 民俗文化조차 振作시키지 못하여 他地方과 比할 때 뜻있는 郡民으로 하여금 어찌 痛嘆을 禁하지 않을 수 있으랴!
다행하게도 이 地方 唯一無二의 土鄕文化財 閱武亭은 靈巖邑 中央에 位置하여 1370년대를 전후하여 남해안으로 잦은 약탈과 노략질을 하던 왜구들로부터 지역민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보장처 역할을 하기 위해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하던 射亭으로 1535년(중종30)에 創建되었다.
兵營兵使의 薦擧로 朝廷에서 閱武亭이라 命名을 받아 現至하면서 그동안 鄕廳의 補助와 地方 先覺人士들의 協助에 依하여 1797년(정조21)에 이르러 이 地方의 有力한 先覺들이 사포계를 組織하여 이곳에서 六藝가운데 하나인 射藝를 익히며 국가를 방위하는 干城를 길러 나라를 지키고, 鄕射禮와 鄕飮酒禮를 중시하는 鄕射도 行하여 왔었다.
長久한 歲月의 흐름에 따라 老朽에 風雨浸剝됨에 1858년에 御史 성이호(成彛鎬)공이 國王의 명을 받들고 본 고을에 잠행하여 그 활쏘는 儀禮를 보고 심히 마음이 기뻐 當時 靈巖郡守 이희무와 吏屬들과 郡民들이 의연금(義捐金)을 원납(願納)케 하여 重修하고 講武之處라 別稱하면서 武士들의 士氣를 鼓舞케 하였다. 그 후 射亭은 세월이 흘러 허물어졌고, 1879년 영암군수 閔敞鎬에 의해 또 다시 重修되었다. 그 후 1935년에 다시 重修되었으며 1937년 昭和 12년 6월에 제1회 全鮮弓術大會가 개최되었다. 1988년 3월 전라남도 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되었으며 1994년 4월 제3회 전국남여궁도대회, 1996년 4월 전국남여궁도대회, 2001년 제5회 전국남여궁도대회를 개최하였다. 2012년에 영암군수 김일태에 의해 壹億貳阡八百萬圓으로 대대적으로 重修하였으며. 射場은 영암읍 동무지구 소도읍 육성사업 토지로 편입 보상비를 지급받고 영암읍 역리 135-1번지로 이전하였다. 우리 世代에 由緖깊은 閱武亭 사포계는 先賢들의 文化遺産으로 永久히 後代에 傳承하기 子子孫孫 이어 나갈 것이다. 西紀 2018년 3월 靈巖 閱武亭 사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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