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영암읍 용흥리 533-1
규모 : 높이 5.16m, 기단높이 1.7m
재료 : 화강암
시대 : 고려목종 12년(1009)
지정년월일 : 1992년 1월 15일
성풍사터에 서있는 탑으로,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두고, 5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예전에는 이 터에서 무너진 채 있었는데, 1986년 3층의 지붕돌과 5층의 몸돌, 지붕돌을 새로 만들어 복원해 놓았다.
2층 옥개석까지만 남아 있었으며, 기단부도 하대중석 두개가 유실되는 등 그 훼손이 심한 상태였으나, 3층 탑신과 4층 옥개석과 탑신을 인근 마을 춘양리에서 수습 1986년 복원했다.
그런데 이탑의 복원을 위한 해체과정에서 1009년, 즉 고려목종 12년(統和27年)이라는 절대 년대가 명기된 탑지(塔誌)와 사리함이 발견되어 고려 초기 석탑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석탑은 그 만든 시기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드문데, 이 탑은 기록을 통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고 또 거의 완전하게 복원된 작품이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을 가진 5층 석탑으로서 탑신과 옥개석이 하나의 판재로 되어 있다.
기단은 각 층 모두 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이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기단부를 보면 지대석은 4매의 장대석으로 짜고, 하대중석도 4매 장대석으로 결구 하였는데 특이한 것은 각면의 양 우주(隅柱)와 중앙의 탱주를 '山'자형으로 새겼다는 점이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쌓아 올렸으며, 몸돌의 모서리마다 건물의 기둥을 세운 듯 기둥모양을 본떠 새겨 놓았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조성년대는 고려목종 12년(1009)으로 당시 영암의 호장(戶長) 박문영(朴文英)이 조정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석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영암군청 문화관광과 제공>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